면역, 태평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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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여름이 가고 계절이 가고 또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어떤 것들은 툭, 나를 건드리고 지나가고, 또 어떤 것들은 내 안에 스며들어 무언가를 싹 튀우거나 병들게도 할 것이다. 내 혈관속의 면역시스템은 때로 너무 게으르거나 쓸데없이 부지런해, 무능하거나 엄살스럽다.  
그런 피를 가지고 태어난 죄로, 어떤 일에는 너무 무능하고 또 어떤 일에는 사소하게 엄살스러워지는 삶을 산다.
지금이 태평성대래,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대, 라는 C의 말이 스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서걱거린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나, 내게는 무협지 같은 데에서나 어울릴 것 같아 보이는, ‘유토피아’처럼 멀고 생경한 말 ‘태평성대’가, 지금 여기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밥을 먹으며 슈퍼스타K를 시청한다.
디펑스 밴드와 천재소년 유승준?은 매력적이고 즐겁다. 이런 오디션 프로의 단골주역이었던 고난과 역경의 주인공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탈락한다. 준수한 외모에 집안배경도 훌륭한 데다 그래서 성품도 온화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로이킴은 노래 실력까지 훌륭하니 박수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그 응원이 온당치 않게 느껴진다. 응원은 정말 응원이 필요한 사람한테 해야되는 거 아냐? 하고. 삐닥하게.
태평성대를, 무균실에서 면역시스템이 필요없는 신체로 사는 삶도 있겠지,라는 생각이 휘릭 지나간다.
곧 비가 오고 날이 추워질 거라는 예보.
여름이 그다지도 더웠으니, 이번 겨울은 꽤나 추울 지도 모르겠다.

목욕가운과 노후걱정

운이 좋게 건강한 이빨을 가지고 태어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양치질을 아주 귀찮아했다.

그 버릇이 나아진 건 십여년 전 친구로부터 전동칫솔을 선물받았을 때부터다. 갖다대기만 하면 알아서 해주니 편하기도 하거니와 훨 빨리 끝낼 수 있으니 감탄스러웠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몸이 움추러들면서 샤워하기가 귀찮아져 내가 선택한 처방은 목욕가운이다.
타월로된 도톰한 목욕가운을 맘 먹고 장만하니 몸이 샤워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이게 생각보다 따뜻한 데다 기분도 좋다.
이렇게, 내 안에 아이가 있다.
엄마가 아이를 길들이듯이, 내 안의 아이를 길들이며 산다.
이제 씻고 치카치카해야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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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일을 하고 있는 두 군데로부터 취업제의가 있다. 한 회사는 창립 이전부터 내가 일을 해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곳이다. 물론 이제사 취업을 한다면 두 번째가 될 가능성이 크고, 첫번째엔 다음주 쯤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거절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아직 못했다.
어쨌거나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다는 건 괜찮은 일이다. 지숙양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언니. 인구가 점점 줄고 있어. 점점 일할 사람이 없어져서 나중에도 우릴 찾게 될 테니까 노후 걱정같은 건 안해도 된다구.”  
반가운 얘기다. 물론 노후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건 상당히 슬픈 일이겠지만, 노후에 대한 걱정을 지금부터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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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폰에서 발견한 사진. 누가 찍었는지 모르지만 반갑다.
강진에서 만났던 아이 사온이와 토토로 음악을 찾고 있었을 거다.
오른쪽에 이화이모님이 쓰신 글씨도 살짝 보인다.  

아이폰의 홈버튼, 슬립버튼이 고장났을 때

아이폰 슬립버튼이 한참 전에 고장났다.

AS 기간은 당연히 지나서 사설수리를 알아봤더니 4만원.

이건 좀 비싼 게 아닌가 싶어 종종 전화가 잘못 걸리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냥 버텼는데
엊그제 문제가 발생했다.
모바일 사이트 기획을 위해 몇몇 어플들의 스크린캡쳐가 필요한데, 이게 전원버튼+슬립버튼으로 작동되는 기능인 것이다.
디바이스 내에 버젓한 기능이 있으니 이에 대한 앱 같은 게 있을리 만무.
그래도 4만원 쓰기는 아까워 검색을 해보다 속시원한 해법을 발견했다.
애플은 이런 훌륭한 기능이 있는 걸 왜 떠들지 않고 감춰두고 있을까 의문이고(Universal Design-장애유무나 연령, 국적, 성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의 평등한 편의를 지향하는 디자인-상이라도 주고 싶다는), 이걸 발견해내 알려주는 사람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 덕분에 4만원이 굳었다는 거!
어쨌거나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슬립버튼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되겠어서 링크해둔다.

김창완, 너를 업던 기억

김창완 밴드, 너를 업던 기억

이다지도 낭만적인 김창완 아저씨.

내 스무살 때의 이상형이 김창완 아저씨였으니,
내 젊은 날의 연애 경험이 그리도 빈약한 거에 이 아저씨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 (나쁘다. -,.-)
그래도 아저씨의 (아직도!) 이 섬세한 감성과 낭만을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영화속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감성을 가진 중년의 아저씨를 발견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말이다.  

김창완 밴드, 앞집에 이사온 아이

어제는 한글날

어젯밤에 퓨전사극 드라마를 잠깐 보다, 김희선이 커다란 스케치북에 “그래도 되요?”라고 쓴 걸 보고 ‘저러면 안될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네티즌의 지적으로 해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가 한글날이어서 초딩들의 한글파괴가 심하다고 뉴스에서 한참을 얘기하드니, 방송사 머쓱하게 생겼다. 저거 해외수출하려면 포샵질 해야겠다.


어느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걸려 있다는 시.

유명시인이 아닌 모양인데도 정말 멋지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좋은 시를 읽을 시민의 권리를 소리높여 주장하고픈 때가 얼마나 많았나.

시라고 붙여놓는다고 다들 시구나, 하고 읽는 게 아니란 말이지.  

좋은 시를 우리도 알아볼 수 있단 말이지.  

이명혜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을 때는

누구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새들도 상수리나무도

침묵하는 온 세상

 

자신의 성을 허물며

떠나가는

저 물결을 봐

 

폭포는 경계를 뛰어

넘고서야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달아

큰 소리 내어 통곡할 줄

안다

에고…

이틀 동안 12페이지의 제품설명서와 모바일앱 기획안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나는 정말 똑똑한가봐. 아직은 이런 노가다 일도 잘하고..’라고 으쓱해하려는 찰나, 시큰거리는 팔목과 뻐근한 어깨근육은 다시 내 기분을 다운시킨다.

이틀간 한 시간여 동네 산책 외에 꼼짝을 안하고 일에 매진한 결과다.  

‘휴. 나이가 드니 이상한 증상 들이 자꾸 늘어가네요.’ 하고 한숨을 쉬는 내게, 서교내과 의사선생님이 단호하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당연하지. 운동을 안하니까!!!”
 
운동이라… 그런데 살아 있는 게 죄다 운동이 아닌가? 숨쉬기 운동, 위장의 소화운동, 혈액순환 운동, 신경세포들의 잡다한 운동들까지… 모든 생명운동, 이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도 한 번도 외출을 못시켰다.  
이번 주말에는 강바람을 쐬어 주고야 말겠다.
기다려라, 나의 비토!
(음. 지킬 수 있을까? -,.-;;)
* 집앞을 뱅뱅 돌며 시험운전하고 돌아왔다. 역시 나는 몸이랑 안 친하다는 결론. 그럼에도 이전에 배웠던 걸 기억해주는 것 같아 감지덕지다. 직선으로는 그냥저냥 가는데, 코너링은 여전히 불안하다.  
핸들이 너무 가볍게 돌아가는 게 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고, 이 무거운 쇳덩어리를 어떤 포즈로 들어야 무릎에 부딪히거나 휘청거리지 않고 3층 계단을 무사히 오르내릴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관리인이 복도에는 못 두게 하드만, 2층 계단 중간에 고이 모셔 있는 자전거는  어떤 빽일까도 궁금하다.

어느 가을

오랫만에 성미산에 산보를 갔다. 시간이 좀 일러 해지는 건 보지 못했다. 와우공원앞에 살 때는 하늘을 보고 튀어나가면 바로 해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어슬렁거리며 한희정의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다, 해가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안해 포기하고 내려와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빵을 골랐다. 바게뜨를 썰다가 두 번이나 똑같은 자리를 베었다고 했더니, 긴 셰프모자를 쓴 아저씨가 바게뜨뿐 아니라 작은 빵 두 개도 한 입 크기로 자잘하게 썰어주었다. 그래서 단골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빵맛도 꽤 괜찮다.  빵집 이름은 “빵나무”.
소문을 내주겠다 공언을 하였으니, 담엔 사진을 찍어 올려야겠다.

나의 ‘어느 가을’을 생각하는 사이, 또 하나의 어느 가을이 가고 있다.  

외로움, 그리고 사진.

며칠 전 가까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의 인간관계가 도마위에 오르고 나서, 나는 내가 꽤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명절 때마다 좀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가족으로 인한 외로움도 한몫 했을 것이다. .

하기는 동서양의 별점이나 사주, 타로를 비롯해 내가 접근해본 지구상의 그 어떤 예언 시스템 중에서 내가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사주라는 걸 빼먹는 건 하나도 보지 못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고 애정과 존경을 받지만 그 자신은 항상 외롭다, 라는 단서도 대체로 붙어 있었다.
지인들이 얘기한 걸 주워담아 보면 그게 대략 진짜 내 사주며 팔자, 운명인 셈이다.
그래, 그게 내 운명이라면? 나는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사진가 이상엽씨의 페북에 올라온 음악을 들었다.
음악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적었다.

“어린 시절 FM라디오에서
이 노래 들으며
참 외롭다는 생각 했다.

그건 이성을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뭔가 갈구하는 것을 채우지 못했던
청소년기의 결핍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 들으면
가슴이 짠하다.

내 어린 시절 외롭던 마음은
과연 무엇을 갈구했을까?
채워졌을까?

사진은 혼자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대략 외로움을 느끼는 걸 ‘능력’으로 가진 사람 같다는 인상이다. 느낄 줄 알고 즐길 줄도 아는. 그게 능력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진도 분명 그게 능력이 되는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어쨌거나, 이 계절에 나는, 더 외로워지겠다. 편안하고 아늑하게 외로움의 품 안으로 성큼 더 잦아들겠다.부대끼는 번잡한 일들에 쉽지는 않을 테지만.

잠이 안와….

요즘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

띄엄띄엄 놓여진 징검다리같아, 쉽게 건너지지 않는다.
사유의 보폭이 좁아진 건지 마음이 조급해진 건지,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우울해진다.
환절기 신체 컨디션이 우울해진 것에도 마음이 쓰인다.
무엇이 문제이길래 잠도 오지 않는 건지, 작금의 내 처지를, 처세를 떠올려보지만 그도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잠이 안와, 잘 읽히지 않아, 천천히, 다시 읽는 시 한 편.
        로맨티스트   – 하재연
        어제는 당신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까지
        이곳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햇빛이 이렇게 맑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친구는 자살을 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십년 만에 만나
        소풍을 떠나는 꿈을 꾼다
        기차를, 기차를 타고
        내년 겨울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어떤 나라의 겨울은 또 다른 나라의 겨울과
        어떻게 다른지
        눈이 녹고 나면 강물은 더 차가워지는지
        떨어진 벚꽃의 분홍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쭈글쭈글한 아이를 낳고
        그 조그만 아이를 업고서
        시장을 볼 것이다
        몇 개의 봉지들을 들고 거리에서 만나
        우리는 모든 걸 감추거나
        모든 걸 드러낸다
        햇빛이 이렇게 눈부셔서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친구들은 빅토리를 그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도 다른 나라에서 돌아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고
        하객이거나 문상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간신히 마지막 문장만 콕, 가슴에 박힌다.

도시락 생각

전 사원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반찬을 나눠먹는다는 어느 사장님의 이야기를 의외라는 표정으로 듣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겐 대체로 도시락에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최소한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지역에선 많은 아이들이 그랬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것은 구차한 집안사정을 까발리는 것과 다름 없었다. 먹을 것이 없진 않았어도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했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무엇의 기준이 상당히 달랐던 시절이다. 대략 단무지와 신 김치, 계란 입힌 쏘세지나 햄 간의 간격이 무지하게 넓었다.
해방후 어떤 시기에는 양철도시락을 신무지에 둘둘 말고 옆구리에 끼고 가면, 단무지와 김치의 노랗고 빨간 국물이 안정된 직장인의 표식이었던 때도 있었다지.  
이 시대 직장인들에겐 도시락이 어떤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어느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기로한 일을 앞두고 슬쩍 스쳐간다. 퇴근후 약속이 잦은 사장님에겐 하루에 한 번 사모님이 만드신 맛있고 몸에 좋은 밥을 먹을 기회라지만, 생활이 팍팍한 싱글족에게도 과연 그럴까? 점심을 제대로 사 먹는 게 하루에 한 번 잘 먹을 기회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살짝.
집안을 뒤져보니 도시락이 두 개나 나온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하나로 묶여지는 것과,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신지카토 도시락이다. 도시락 쌀 일도 없었는데 왜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먹어 보고 싶다는 얘기를 누구에겐가 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있다. 이런 생각에도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대체로 먹는 거에 무신경한 편인 것도 그러한 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되었던 방어기제가 아직도 조금은 작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도시락을 싸야한다는 건 약간의 부담이다. 도대체 도시락에 뭘 싸가야하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H사장님 말씀대로 참치캔을 하나 사들고 갈 판이다.
뭐 곧 익숙해지거나, 익숙해지기 전에 그래야 하는 시간들이 후딱 지나갈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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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을 첨 싸가지고 간 날, 앞에서 밥을 먹던 한 개발자는 자신의 도시락이 ‘전날의 그의 행적에 대한 아내의 성적표’라고 말했다. 바로 바로 다음날 반영이 되는 성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