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이틀 동안 12페이지의 제품설명서와 모바일앱 기획안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나는 정말 똑똑한가봐. 아직은 이런 노가다 일도 잘하고..’라고 으쓱해하려는 찰나, 시큰거리는 팔목과 뻐근한 어깨근육은 다시 내 기분을 다운시킨다.

이틀간 한 시간여 동네 산책 외에 꼼짝을 안하고 일에 매진한 결과다.  

‘휴. 나이가 드니 이상한 증상 들이 자꾸 늘어가네요.’ 하고 한숨을 쉬는 내게, 서교내과 의사선생님이 단호하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당연하지. 운동을 안하니까!!!”
 
운동이라… 그런데 살아 있는 게 죄다 운동이 아닌가? 숨쉬기 운동, 위장의 소화운동, 혈액순환 운동, 신경세포들의 잡다한 운동들까지… 모든 생명운동, 이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도 한 번도 외출을 못시켰다.  
이번 주말에는 강바람을 쐬어 주고야 말겠다.
기다려라, 나의 비토!
(음. 지킬 수 있을까? -,.-;;)
* 집앞을 뱅뱅 돌며 시험운전하고 돌아왔다. 역시 나는 몸이랑 안 친하다는 결론. 그럼에도 이전에 배웠던 걸 기억해주는 것 같아 감지덕지다. 직선으로는 그냥저냥 가는데, 코너링은 여전히 불안하다.  
핸들이 너무 가볍게 돌아가는 게 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고, 이 무거운 쇳덩어리를 어떤 포즈로 들어야 무릎에 부딪히거나 휘청거리지 않고 3층 계단을 무사히 오르내릴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관리인이 복도에는 못 두게 하드만, 2층 계단 중간에 고이 모셔 있는 자전거는  어떤 빽일까도 궁금하다.

어느 가을

오랫만에 성미산에 산보를 갔다. 시간이 좀 일러 해지는 건 보지 못했다. 와우공원앞에 살 때는 하늘을 보고 튀어나가면 바로 해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어슬렁거리며 한희정의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다, 해가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안해 포기하고 내려와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빵을 골랐다. 바게뜨를 썰다가 두 번이나 똑같은 자리를 베었다고 했더니, 긴 셰프모자를 쓴 아저씨가 바게뜨뿐 아니라 작은 빵 두 개도 한 입 크기로 자잘하게 썰어주었다. 그래서 단골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빵맛도 꽤 괜찮다.  빵집 이름은 “빵나무”.
소문을 내주겠다 공언을 하였으니, 담엔 사진을 찍어 올려야겠다.

나의 ‘어느 가을’을 생각하는 사이, 또 하나의 어느 가을이 가고 있다.  

외로움, 그리고 사진.

며칠 전 가까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의 인간관계가 도마위에 오르고 나서, 나는 내가 꽤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명절 때마다 좀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가족으로 인한 외로움도 한몫 했을 것이다. .

하기는 동서양의 별점이나 사주, 타로를 비롯해 내가 접근해본 지구상의 그 어떤 예언 시스템 중에서 내가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사주라는 걸 빼먹는 건 하나도 보지 못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고 애정과 존경을 받지만 그 자신은 항상 외롭다, 라는 단서도 대체로 붙어 있었다.
지인들이 얘기한 걸 주워담아 보면 그게 대략 진짜 내 사주며 팔자, 운명인 셈이다.
그래, 그게 내 운명이라면? 나는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사진가 이상엽씨의 페북에 올라온 음악을 들었다.
음악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적었다.

“어린 시절 FM라디오에서
이 노래 들으며
참 외롭다는 생각 했다.

그건 이성을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뭔가 갈구하는 것을 채우지 못했던
청소년기의 결핍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 들으면
가슴이 짠하다.

내 어린 시절 외롭던 마음은
과연 무엇을 갈구했을까?
채워졌을까?

사진은 혼자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대략 외로움을 느끼는 걸 ‘능력’으로 가진 사람 같다는 인상이다. 느낄 줄 알고 즐길 줄도 아는. 그게 능력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진도 분명 그게 능력이 되는 영역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 어쨌거나, 이 계절에 나는, 더 외로워지겠다. 편안하고 아늑하게 외로움의 품 안으로 성큼 더 잦아들겠다.부대끼는 번잡한 일들에 쉽지는 않을 테지만.

잠이 안와….

요즘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

띄엄띄엄 놓여진 징검다리같아, 쉽게 건너지지 않는다.
사유의 보폭이 좁아진 건지 마음이 조급해진 건지,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우울해진다.
환절기 신체 컨디션이 우울해진 것에도 마음이 쓰인다.
무엇이 문제이길래 잠도 오지 않는 건지, 작금의 내 처지를, 처세를 떠올려보지만 그도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잠이 안와, 잘 읽히지 않아, 천천히, 다시 읽는 시 한 편.
        로맨티스트   – 하재연
        어제는 당신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까지
        이곳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햇빛이 이렇게 맑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친구는 자살을 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십년 만에 만나
        소풍을 떠나는 꿈을 꾼다
        기차를, 기차를 타고
        내년 겨울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어떤 나라의 겨울은 또 다른 나라의 겨울과
        어떻게 다른지
        눈이 녹고 나면 강물은 더 차가워지는지
        떨어진 벚꽃의 분홍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쭈글쭈글한 아이를 낳고
        그 조그만 아이를 업고서
        시장을 볼 것이다
        몇 개의 봉지들을 들고 거리에서 만나
        우리는 모든 걸 감추거나
        모든 걸 드러낸다
        햇빛이 이렇게 눈부셔서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친구들은 빅토리를 그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도 다른 나라에서 돌아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고
        하객이거나 문상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간신히 마지막 문장만 콕, 가슴에 박힌다.

도시락 생각

전 사원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반찬을 나눠먹는다는 어느 사장님의 이야기를 의외라는 표정으로 듣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겐 대체로 도시락에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최소한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지역에선 많은 아이들이 그랬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것은 구차한 집안사정을 까발리는 것과 다름 없었다. 먹을 것이 없진 않았어도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했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무엇의 기준이 상당히 달랐던 시절이다. 대략 단무지와 신 김치, 계란 입힌 쏘세지나 햄 간의 간격이 무지하게 넓었다.
해방후 어떤 시기에는 양철도시락을 신무지에 둘둘 말고 옆구리에 끼고 가면, 단무지와 김치의 노랗고 빨간 국물이 안정된 직장인의 표식이었던 때도 있었다지.  
이 시대 직장인들에겐 도시락이 어떤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어느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기로한 일을 앞두고 슬쩍 스쳐간다. 퇴근후 약속이 잦은 사장님에겐 하루에 한 번 사모님이 만드신 맛있고 몸에 좋은 밥을 먹을 기회라지만, 생활이 팍팍한 싱글족에게도 과연 그럴까? 점심을 제대로 사 먹는 게 하루에 한 번 잘 먹을 기회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살짝.
집안을 뒤져보니 도시락이 두 개나 나온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하나로 묶여지는 것과,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신지카토 도시락이다. 도시락 쌀 일도 없었는데 왜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먹어 보고 싶다는 얘기를 누구에겐가 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있다. 이런 생각에도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대체로 먹는 거에 무신경한 편인 것도 그러한 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되었던 방어기제가 아직도 조금은 작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도시락을 싸야한다는 건 약간의 부담이다. 도대체 도시락에 뭘 싸가야하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H사장님 말씀대로 참치캔을 하나 사들고 갈 판이다.
뭐 곧 익숙해지거나, 익숙해지기 전에 그래야 하는 시간들이 후딱 지나갈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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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을 첨 싸가지고 간 날, 앞에서 밥을 먹던 한 개발자는 자신의 도시락이 ‘전날의 그의 행적에 대한 아내의 성적표’라고 말했다. 바로 바로 다음날 반영이 되는 성적표!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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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에서의 이튿날, 잠깐의 아침 우중산책은 들판, 골목길, 길모퉁이, 처마 같은 다정하고도 어여쁜 말들을 상기시켜주었다. 그건 내게도 유년시절의 기억과 닿아있는 것들이어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아래 ** 님의 꼬꼬마시절 “좁은 골목들 하며 흙탕물 튀기던 길바닥”들도 있었다.
어느 담벼락 아래서는, 고인 빗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들이 경쾌했다.

무심하게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동심원들속에서 육체의 쇠락과 소멸을 묵묵히 견디어가고 있는 감 열매는 우아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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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작천의 이모님을 생각나게 한 건 담벼락의 꽃 때문일 수도 있겠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몇 자 적다 삭제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온도가 매우 다른-이 혼재된 아름다움이 있다.
아니면 저 길 모퉁이로부터 시작되어 멀어지는 길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 뵙는 쑥쓰러움에 슬쩍 슬쩍 바라본 이모님의 눈빛은 때로, 호젓한 길 위에서, 떠나는 사람 혹은 떠나는 것들을 홀로 오래 오래 배웅하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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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군 작천면 

정리충동

MDF 박스를 주문해 책상위에 올려놓으니 번잡한 파일들과 CD, 하드디스크들, 잉크병과 연필깎이 따위들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진작 이리 할 걸. 며칠 후 칸막이용 2단 책꽂이가 도착하면 책상옆에 쌓여있는 것들도 정리되고 사무실 분위기도 좀 날 것이다. 주거공간이자 작업공간이기도 한 멀티 스페이스이다.

이 넓지도 않은 방을, 자꾸 뭔가를 정리하고 싶은 충동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다. 두어 가지는 생각이 났지만 좀 귀찮아 포기한다.
사실 정말 정리하고 싶은 건 나의 일부, 어떤 행동들, 내가 뱉아놓은 말들임을 안다. 방심한 틈을 타 튀어나온 그것들이 어수선하게 내주변을 떠돌다 나를 콕콕 찌르고 달아나는 것 같다.  
나쁜 꿈은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세게 저으면 사라져 버린다던데… 꿈도 아닌 것들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저 감당해야할 것이다.
뱅쇼님의 블로그에서 본 새우깡이 생각난다.
지난 날 대학가의 모든 호프집의 기본안주가 새우깡이어서, 그걸 먹고(그 땐 안주가 늘 충분치 않아서 참 많이도 먹어댔었다.) 대학생들이 죄다 멍청해졌다는 오래 전 얘기가 떠올라서였을까?
누군가는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두달동안 새우깡과 소주만을 끼고 살기도 했다지.
그러고보니 새우깡을 먹어본 지도 너무도 오래.  

사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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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현재, 나를 누나라고 불러준 최연소자.

“사색적”거나, “초절정 명랑소년”인 아주 쪼그만 아이가,
물방울 구르듯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쪼르르 내게로 왔다.
그 거리가 가까워 내 렌즈는 자꾸 촛점을 잃었다.

말을 줄일 것.

특히나 내게 속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걸 삼엄히 경계할 것.
어쩌다 그 경계의 고리 느슨해지거든, 오로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