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문

“달이 평소보다 크게 보이는 ‘슈퍼문’, 한 달에 두 번 뜨는 ‘블루문’, 개기월식으로 인한 블러드문”을 35만 9307㎞가 떨어진 지구, 서울 은평구 건물 옥상에서 지켜보았다.
개기 월식도 신기하긴 하였으나,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점점 사위어 가던 달이 어느 순간 다시 붉은 빛으로 빛나는 걸 보는 건 보다 인상적이었다.
찾아보니 해의 장파장이 지구의 겉을 돌아 달에 도착해서 생기는 현상이란다.

가리워져 지워지고 사라진 후에 멀리 돌아온 다른 빛으로 다시 빛난다는 “블러드문”을, (그 섬뜩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우주에서 은밀하게 보내온 다정한 메시지로 수신해보는 멜랑꼴리한 밤.

슬기로운 2018년을 기원하며.

청소를 하고 칼(과도와 가죽용의 물리적인 칼)을 갈고, 결방이 안타까웠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재방을 이어 보며 새해의 소망을 품어본다.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재활이 쉽지 않은 난관이 닥쳐 오더라도 김재혁의 오른팔 같은 선택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를…

김애란, 바깥은 여름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不在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熱이다. -108p, 침묵의 미래

 

오래된 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어색한 듯 자명하게 서 있다. 정확히 어떤 색이라 불러야할지 모를, 1970년대 때깔 혹은 낙관적 파랑을 등에 인 채, 코닥산 명도, 후지식 채도에 안겨 있다.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할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 -132pm,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나왔다. -152p, 풍경의 쓸모

 

남편을 일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 소리, 내가 쓰는 물 소리, 내가 닫는 문 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거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 199p,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딕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 199p,

 

#바깥은 눈부신 가을. 나는 계절과 시간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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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을 살다간 한 생명체의 외피였던 가죽위에 뜨거운 기계로 “불박”을 찍는다.
저마다 다른 가죽의 특성에 꼭 맞는 온도와 시간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때면 오래 전 필름을 현상하면서 온도와 시간을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
찾아낸 조합이 또 늘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어서 찍기 전에 쪼가리 가죽으로 꼭 테스트를 해보지만
그럼에도 살짝 모자라거나 과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실패의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고, 시행착오의 축적이 대체로 정직하게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만들어진 이 무늬를, 혹은 화인을 (특히나 이런 야심한 밤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상념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살면서 나는 과연 적절히 뜨거웠는가.
뜨거워도 좋을 때에 턱없이 차갑고, 냉정을 지켜야할 때에 대책없이 달아올라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닌가.
적당한 온도로 만난 대상도 너무 빨리, 미리 이별해버리거나
떠나야할 것들을, 버려야할 것들을 껴안고 있다가 지지직 타버리고 사그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는 일도 시행착오만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식의.

지난 여름은 그리 무성하지 못하여 꽤나 서늘한 가을을, 추궁기를 지나고 있다.
몇 가지 일들이 좌절되었고, 몇 가지 오해가 생겨났으며, 그럼에도 몇 가지는 시도되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적당히 당당하게”

홍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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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사는 홍도.

달력 사진을 찍는데, 청하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다가와 포즈를 취해주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 살가운 눈길과 보드라운 스킨쉽을 허락해주다니.
홍도 같은 녀석과 동거할 수 있는 만큼만, 그 정도의 여유와 능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예뻐서 주말 내내 작업한 사이트에 출연을 시켰다. 반응이 좋다.
달력 판매는 여기서…

http://www.forestogether.org/artshop

새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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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맘에 드네… 출처 오마이뉴스 )

새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돌이켜보니 이번 선거만큼 불안이 적었던 때가 없어던 거 같다.
지금 들리는 취임사대로, 그렇게만 되면 좋을 것이다.
(어제 페북에서 본 예언에 의하면, 문재인씨가 되면 우리 자식들이 잘 살게 되고, 안철수가 되면 안철수가 잘 살게 되고, 유승민이 되면 지금 그대로 살고, 심상정씨가 되면 손주들이 잘 살고, 홍준표가 되면 모두가 망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좀 더 미래를 선택하였다.)
취임사에 나온 새대통령의 얼굴이 밝다.
뽑아 놓고 보니 참 괜찮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기를.
어쨌든 좋다. 최소한 티비를 보다가 대통령 얼굴이 나와 채널을 돌려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이게 얼마만인가…. )

다섯 달 동안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며 싸웠던 사진가 ㄴ씨에게서 오랫만에 답문자가 왔다.
우려한 대로 몸이 아파 쉬었다고 한다. 조만간 고기 먹으러 응암동 벙구갈비로 가자 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연락이 온 또 다른 예술가는 현재 작업중인 일의 클라이언트다.
나와의 관계가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삶 자체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 있다..
아티스트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한 데 묶는 게 도저히 말이 안되어 보일 만큼.

하기는..예술가라든지, 정치가라든지 그 외 어떤 카테고리로도, 저마다의 인간 삶을 카테고리화한다는 게 말이 안되기도 하지.
같은 정치가라는 타이틀로 나선 대선 후보간에 보이는 간극들은 얼마나 엄청난 것들인지 꽤 디테일하게 경험을 한 시간들이었다는 생각.
‘그네씨가 취임할 때 온국민이 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한다더니 현실화되었다’는 중계방송 멘트가 재밌네…

편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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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영 거북한 목소리로 4차 산업을 외쳐대는 후보가 여기 저기 출몰하는 이 때에, 3차 산업은(혹은 우리는 -,.- ) 이제 글렀다며 2차 산업(혹은 1차 산업)으로 가야한다던 지인(나름 IT계의 브레인이었던)의 말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 상황에, 누가 볼세라 꽁꽁 숨겨두듯 했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개비하며 슬라이드 이미지를 찾다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끄집어 내었다.
벌써 아득해진 수년 전, 동생이 부탁한 일로 겸사겸사 LA에 갔다가 1년을 살게 되면서 만났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을 가능케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 급하게 거기를 떠나올 때 고맙다는 인사나 제대로 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만나지지는 않더라고, 그 고마움은 간직하며 살아야지 하며, 그 때의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을 첫화면에 건다.
http://sidle.net/

*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게 또 쉽지 않은 법이다. 큰 사고나 상처 같은 것 뿐 아니라 작은 우연으로도, 별 거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멀어지거나 어긋나 지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런 것이다, 사는 게.

** 나를 설득하려던 그의 노력은 실패하였고, 그렇게 고민하던 일을 정리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편두통이 물러갔다. (“동명이인” 같던 몸과 마음이 이제 정말로 하나가 되려는 건가). 그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기 위해, 위대한 자기서사의 조연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호출하고 소비하는 그의 계속되는 말, 말들은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와 손을 잡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로 판명이 난다 하여도…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으로 살지,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질 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너무 칙칙하다.
술렁이는 이 땅의 각종 소식들과 남쪽 지방의 화창한 봄날 안부를 들으며…
라면이나 먹어야 겠다. MSG가 필요한 시간이다.

멀리서, 김지혜와 탕웨이

탕웨이도 이 노래를 불렀다는 걸 오늘 알았다.
하지만 내겐 역시나 손성제 <비의 비가>에서 만난 김지혜의 목소리가 훨 좋다.

수년 만에 만난 친구가 음악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해 얘기할 때, 친구를 안쓰러이 보았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그러고 있다. 어지러운 시국 탓만은 아닐 것이다.
즐겨 듣던 시디를 꺼내고, 휴대폰에 저장된 팟캐스트를 지우고 음악을 다운 받는다.
그러고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 인생에 대한 회한이 남아, 낮에 만난 H에게 전화를 걸어 “나처럼은 살지 말라” 잔소리를 한다.
나른하게 피곤했던 찬란한 봄날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형광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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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하지 않은’, “마일드”한 색감에, 뚜껑을 잃어버릴 염려없는 노크식 심플한 디자인이 딱이다 싶긴 하였으나, 한 다스는 너무 많았다. 펜 한두 자루 사기엔 배송비가 아깝기도 하였겠지만, 배송되어온 작은 박스를 개봉하고 보니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뭘, 얼마나 ‘하이라이트’할 수 있을까!

* 그가 말한 “free”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비 오는 날 술 마실 수 있는 자유?) 어쨌거나 그는 꽤 자유로워 보였다.
그의 정신은, 영혼은 이제 공간과 시간도 가로질러 더욱 자유로워지려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단단해진 사유는 그의 삶을 더더 두터웁고 풍요롭게 만드리라.

** 이제 막 검찰 조사를 마친, 평생을 왕국의 마마로 살았던 그녀의 얄팍한 삶의 두께는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어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고수해야했던, 나로서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올림머리는 그래서 꽤나 상징적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그녀는 인위적으로 공들여 부풀린 머리를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푹 꺼진 머리를 한 자신의 본모습-초라한 자아-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데 문득 궁금해지기는 한다. 그렇게 전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고수해야하는 올림머리라는 거. 매일 한 시간 이상을 지루해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컨텍트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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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트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감독)

아련한 추억이 있는 칼 세이건 원작,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로버트 제메스키 감독)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소 느슨한 템포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상당했으며 (역시 SF는 극장에서 보아야…)
소통이나 화합이라는, 이젠 낡고 닳아 진부해 보이는 단어들조차 새롭게 다가왔다.
언어학자 루이스역의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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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루이스가 외계의 생명체와의 만남을 통해 습득해가는 저들의 언어였다.
지시체와 의미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 그 자체인 표의 문자.
시제가 없으며, 순차적 혹은 계기적이지 않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른 구조로 융합되어 있는 원형의 언어다.

그들의 언어를 학습해가는 과정에서 루이스가 맞닥뜨리는 강렬한 경험은 (예상되는 바이긴 하였으나) 생생한 과거 (혹은 미래) 이미지들과의 만남이다.
소멸되지 않는 기억, 시간들, 떠나 보낼 수 없는 존재들과 의미들을 불러오는, 그들의 이미지들을 촉발시키는 저 원의 형상은
자연스레 강렬한 사진 이미지의 체험을, 푼크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원작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