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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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 사는 홍도.

달력 사진을 찍는데, 청하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다가와 포즈를 취해주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 살가운 눈길과 보드라운 스킨쉽을 허락해주다니.
홍도 같은 녀석과 동거할 수 있는 만큼만, 그 정도의 여유와 능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예뻐서 주말 내내 작업한 사이트에 출연을 시켰다. 반응이 좋다.
달력 판매는 여기서…

http://www.forestogether.org/artshop

새 대통령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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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맘에 드네… 출처 오마이뉴스 )

새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돌이켜보니 이번 선거만큼 불안이 적었던 때가 없어던 거 같다.
지금 들리는 취임사대로, 그렇게만 되면 좋을 것이다.
(어제 페북에서 본 예언에 의하면, 문재인씨가 되면 우리 자식들이 잘 살게 되고, 안철수가 되면 안철수가 잘 살게 되고, 유승민이 되면 지금 그대로 살고, 심상정씨가 되면 손주들이 잘 살고, 홍준표가 되면 모두가 망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좀 더 미래를 선택하였다.)
취임사에 나온 새대통령의 얼굴이 밝다.
뽑아 놓고 보니 참 괜찮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기를.
어쨌든 좋다. 최소한 티비를 보다가 대통령 얼굴이 나와 채널을 돌려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이게 얼마만인가…. )

다섯 달 동안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며 싸웠던 사진가 ㄴ씨에게서 오랫만에 답문자가 왔다.
우려한 대로 몸이 아파 쉬었다고 한다. 조만간 고기 먹으러 응암동 벙구갈비로 가자 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연락이 온 또 다른 예술가는 현재 작업중인 일의 클라이언트다.
나와의 관계가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삶 자체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 있다..
아티스트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한 데 묶는 게 도저히 말이 안되어 보일 만큼.

하기는..예술가라든지, 정치가라든지 그 외 어떤 카테고리로도, 저마다의 인간 삶을 카테고리화한다는 게 말이 안되기도 하지.
같은 정치가라는 타이틀로 나선 대선 후보간에 보이는 간극들은 얼마나 엄청난 것들인지 꽤 디테일하게 경험을 한 시간들이었다는 생각.
‘그네씨가 취임할 때 온국민이 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한다더니 현실화되었다’는 중계방송 멘트가 재밌네…

편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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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영 거북한 목소리로 4차 산업을 외쳐대는 후보가 여기 저기 출몰하는 이 때에, 3차 산업은(혹은 우리는 -,.- ) 이제 글렀다며 2차 산업(혹은 1차 산업)으로 가야한다던 지인(나름 IT계의 브레인이었던)의 말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 상황에, 누가 볼세라 꽁꽁 숨겨두듯 했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개비하며 슬라이드 이미지를 찾다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끄집어 내었다.
벌써 아득해진 수년 전, 동생이 부탁한 일로 겸사겸사 LA에 갔다가 1년을 살게 되면서 만났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을 가능케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 급하게 거기를 떠나올 때 고맙다는 인사나 제대로 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만나지지는 않더라고, 그 고마움은 간직하며 살아야지 하며, 그 때의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을 첫화면에 건다.
http://sidle.net/

*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게 또 쉽지 않은 법이다. 큰 사고나 상처 같은 것 뿐 아니라 작은 우연으로도, 별 거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멀어지거나 어긋나 지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런 것이다, 사는 게.

** 나를 설득하려던 그의 노력은 실패하였고, 그렇게 고민하던 일을 정리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편두통이 물러갔다. (“동명이인” 같던 몸과 마음이 이제 정말로 하나가 되려는 건가). 그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기 위해, 위대한 자기서사의 조연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호출하고 소비하는 그의 계속되는 말, 말들은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와 손을 잡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로 판명이 난다 하여도…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으로 살지,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질 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너무 칙칙하다.
술렁이는 이 땅의 각종 소식들과 남쪽 지방의 화창한 봄날 안부를 들으며…
라면이나 먹어야 겠다. MSG가 필요한 시간이다.

멀리서, 김지혜와 탕웨이

탕웨이도 이 노래를 불렀다는 걸 오늘 알았다.
하지만 내겐 역시나 손성제 <비의 비가>에서 만난 김지혜의 목소리가 훨 좋다.

수년 만에 만난 친구가 음악을 듣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해 얘기할 때, 친구를 안쓰러이 보았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그러고 있다. 어지러운 시국 탓만은 아닐 것이다.
즐겨 듣던 시디를 꺼내고, 휴대폰에 저장된 팟캐스트를 지우고 음악을 다운 받는다.
그러고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된 인생에 대한 회한이 남아, 낮에 만난 H에게 전화를 걸어 “나처럼은 살지 말라” 잔소리를 한다.
나른하게 피곤했던 찬란한 봄날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형광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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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하지 않은’, “마일드”한 색감에, 뚜껑을 잃어버릴 염려없는 노크식 심플한 디자인이 딱이다 싶긴 하였으나, 한 다스는 너무 많았다. 펜 한두 자루 사기엔 배송비가 아깝기도 하였겠지만, 배송되어온 작은 박스를 개봉하고 보니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뭘, 얼마나 ‘하이라이트’할 수 있을까!

* 그가 말한 “free”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비 오는 날 술 마실 수 있는 자유?) 어쨌거나 그는 꽤 자유로워 보였다.
그의 정신은, 영혼은 이제 공간과 시간도 가로질러 더욱 자유로워지려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단단해진 사유는 그의 삶을 더더 두터웁고 풍요롭게 만드리라.

** 이제 막 검찰 조사를 마친, 평생을 왕국의 마마로 살았던 그녀의 얄팍한 삶의 두께는 얼마나 기이한 것인지.
어제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고수해야했던, 나로서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올림머리는 그래서 꽤나 상징적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그녀는 인위적으로 공들여 부풀린 머리를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푹 꺼진 머리를 한 자신의 본모습-초라한 자아-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데 문득 궁금해지기는 한다. 그렇게 전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고수해야하는 올림머리라는 거. 매일 한 시간 이상을 지루해서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컨텍트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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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트 (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감독)

아련한 추억이 있는 칼 세이건 원작,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로버트 제메스키 감독)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소 느슨한 템포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상당했으며 (역시 SF는 극장에서 보아야…)
소통이나 화합이라는, 이젠 낡고 닳아 진부해 보이는 단어들조차 새롭게 다가왔다.
언어학자 루이스역의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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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루이스가 외계의 생명체와의 만남을 통해 습득해가는 저들의 언어였다.
지시체와 의미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 그 자체인 표의 문자.
시제가 없으며, 순차적 혹은 계기적이지 않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른 구조로 융합되어 있는 원형의 언어다.

그들의 언어를 학습해가는 과정에서 루이스가 맞닥뜨리는 강렬한 경험은 (예상되는 바이긴 하였으나) 생생한 과거 (혹은 미래) 이미지들과의 만남이다.
소멸되지 않는 기억, 시간들, 떠나 보낼 수 없는 존재들과 의미들을 불러오는, 그들의 이미지들을 촉발시키는 저 원의 형상은
자연스레 강렬한 사진 이미지의 체험을, 푼크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원작을 읽어봐야겠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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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회를 핑계로 맛난 걸 먹으러 나오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오랫동안 벼르던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이 나는 건 새삼스런 일은 아니긴 하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항하는 답답하고 지난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만남과 낙관적 연대를 안단테로 따라가던 영화가 갑작스레 비극적 결말을 들이밀자, 눈물과 함께 비명 같은 소리가 내 심장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 당했어…이 지독한  “낙관적인 비관론자” 같으니라구….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이 빌어먹을 사회를 향해 남긴 마지막 인간 선언.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 안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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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수다.
벼랑 끝의 케이트를 오열하게 했던, 너를 위해 책장을 만들고 있었다는 말의 감동은 당연히도 목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니,
역시 목수는 멋있다는 결론.
이 생에 목수 되기는 진작 글렀고, 저 나무로 만든 물고기를 하드한 가죽으로나 만들어 볼까나… 
 
*사실 도깨비를 보면서도 눈물이 났었다.
한데 농도나 온도는 좀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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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을 받고 좋아라 하던 조카 녀석들이, 드라마 도깨비 얘기가 나오자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단호하게 그런 드라마가 싫다고- 나이든 아저씨들이 그걸 보고 자기도 19살하고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싫단다-는 누나에게 동생은 말했다.
“누난 너무 비관적이야”라고.
그들의 풋풋한 대화를 재밌게 듣던 나, 그런 내용만은 아닌데… ” 하며 말을 꺼냈다 줄였는데,
언젠가는 이 녀석들과 이런 얘기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모가 생각하기에 이건 기억에 관한 얘기이기도 한 것 같어.
망각은 신의 배려라 하는데, 망각의 기회가 주어져도 어떤 인간들은 끝내 기억을 선택하잖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 생에서 다음 생에 이르도록 끈질기게도.
그리하여 자유의지로 빛나는 자신의 생을, 살아있는 시간을 사는 거지… 
 
** 지금 보니 이 포스터는 브레송의 패러디 or 오마쥬?…
 
*** 케이티가 성노동을 선택한 것에 대한 다니엘의 신파적 반응이 살짝 불편했는데 그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발견했다.
오마이유스의 “‘인간 존엄’ 말하는 켄 로치 감독, 그가 놓친 ‘성 노동’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놓쳤던 물음에 관하여(이선욱)” 이란 제목의 기사다. … 

 
“(…..) 만일, 성 노동을 하게 된 케이티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신뢰하는 조력자 다니엘이 “네가 어떤 일을 하든 내게 너는 똑같은 케이티야”, “너의 수고로 아이들에게 신선한 과일을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성매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잠시 뒤로 하더라도 케이티가 느꼈을 비참함은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다니엘처럼 케이티 또한 열심히 살았고, 성심껏 이웃을 도왔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니엘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저녁을 대접하고 자신은 손이 떨리는 허기를 감내하며 굶는다. 나는 타인의 도움을 인식하고, 이를 고맙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돌려주려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것. 그것이 밑바닥 삶 속에서도 그녀가 지키려는 자존심이다. 다니엘은 그녀의 배고픔을 알면서도 기꺼이 호의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자존심을 먼저 배려하는 그 태도가 왜 성 노동을 선택한 상황에서는 지켜지지 못했을까?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를 개봉하면서 “가난은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 성 노동을 ‘이런 일’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성 노동자에게는 잔인한 일이다. 영화 속 다니엘의 말처럼, 힘겨운 삶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우리한테는 -비록 선의에 기댄 것일지라도- 편견이나 평가, 심판의 말 대신 그저 기대어 쉴 바람이 필요할 뿐이다. 나와 당신이 서로에게 그 바람이 되어 줄 때, 비록 나쁜 정부가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
 
–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7816

 
상당히 일리있는, 실은 전폭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긴 한데, 이 대목에서 켄 로치 감독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80세 할아버지가 아니신가…

아재 개그가 재미있는 나…

멜론 이야기

bin(@hi_bin)님이 게시한 사진님,

“인스타그램에서는 ‘hi_b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김정빈은 멋진 그림체와 이마를 치게 하는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8/11/story_n_11442008.html

윤덕원, 농담

쓸쓸한, 농담의 풍경.

2017년이 밝았다.

어스름한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날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뭉기적거리다 8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모닝커피와 신진대사를 위해 챙겨먹는 요구르트를 먹고 나와 도착한 곳은 결코 외워지지 않는 긴 이름을 가진 동네 대중목욕탕.
휴일이라 그런가 사람은 많지 않았고, 한적한 탕 속에서 오래 전 배운 자유형과 배형과 평형의 발동작을 한가로이 되새기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히 평화로웠다.
탕 속에 몸을 깊이 담그고 지그시 눈도 감은 채로 시름을 떨궈내는 할머니의 표정은 얼마나 개운해 보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엄마 옆에서, 들고 온 아기인형을 목욕시킨다고 엄마 흉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태는 얼마나 예쁘던지.
변기조차 타인과 공유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새해 맞이 이벤트로 어지러운 방 안 정리를 했다.
고장난 물건은 고치거나 버리고, 잘 쓰지 않는 몇 가지 물건은 중고나라에 올려 처분했다.
스피드 앵글?을 주문해 조립하여 늘어난 잡동사니들도 정리하였는데, 남자들이 ‘만나기 쉽지 않다’말하는, ‘만들기 좋아하는 여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난관을 겪기도 했다.
결국 접합 부분이 느슨한 상태로 설치가 되었지만, 기능엔 문제가 없으니 뭐 어떠리.
불완전한 조립에도, 이제 막 더해진 나이 한 살의 무게에도 이상스레 마음이 가볍다.
바로 앞선 선배들의 위로가 그냥 위로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이다.
그나저나 물욕이 많아진 것일까, 방 안 물건이 너무 늘었다.
새해부턴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도 마음도.

며칠 전 만났던 그는 예전보다 많이 여위어 있었다. 여윈 얼굴에는 형형한 눈빛이 도드라져 보였다. 깊은 강을 건너와, 깊은 강의 비밀을 알아버린 자의 눈빛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예전보다 가벼워 보였다. 10kg 체중이 빠져나갔다고 들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가벼운 맥주에 가벼운 수다로 얼큰해져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예전에 그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전의 그는 뿌리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그는 날개가 있어 행복한 사람 쪽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뿌리를 선망하여 내 뿌리의 미약함을, 든든한 뿌리의 부재를 아쉬워했었는데,
지금의 나는 날개를 선망하는, 뿌리로 인한 무게보다, 날개로 인한 가벼움을 욕망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또한 나이듦의 자연스런 현상일까?

새해가 밝았다 하여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서랍정리도 하다 반가운 사진을 발견했다.
언제인가.. 신영복선생님과 함께 맞이했던 새해 일출 사진이다.
누가 찍었는지 분명 해가 뜨는 시점이었는데 해도 없고 어스름한 하늘에 얼굴들도 심히 어둡고 희미하다.
(내가 나왔으므로 나는 아니다.)
그래도 그 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는 그 목소리의 톤까지 생각이 난다.
한 해 동안 공전하는 지구 위에서 태양 주위를 한 바퀴나 돌았으니, 그 먼거리를 여행하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수고한 것이냐며 대견하다 해주시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