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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논리,공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논리,공론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백승찬·주영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ㆍ나꼼수의 음모론·대안언론 한계 논란 확산

‘비키니 응원’에 대한 <나는 꼼수다>(나꼼수) 패널의 ‘성희롱성 발언’과 이에 대한 비판과 옹호에는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가 내재돼 있다. ‘우리 편은 옳다’는 진영논리, 모든 공론을 의심케 하는 음모론, 열악한 정치·언론 환경에 따른 대안매체의 또 다른 문제점 등이다. ‘비키니 시위’ 방식과 이에 대한 <나꼼수>의 대응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먼저 ‘우리 편’은 옳은 것인가.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나꼼수> 지지자들이 ‘진보 먹물’을 비판하는 것은 1980년대의 권위적인 운동권 문화와 비슷하다”며 “이들은 대중의 호응을 등에 업고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조차 밀어붙여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 ‘반MB’를 절대선으로 보는 것은 비지성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나꼼수> 팬덤이 ‘반MB’라는 깃발 아래 진보진영의 다양한 논의들을 무마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나꼼수> 팬들도 정치동원의 한 주체다. 제도권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원외 정치 그룹이 활성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이 “이견을 받아들이고 수정하고 참고하는 메커니즘 대신, 이미 내려진 판단 중에서 센 것만 강화한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정치에 대한 판단을 축소시킨다”고 덧붙였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나꼼수>의 ‘현실정치적이고 남성적’인 정치해석을 지적했다. 그는 “정치란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삶의 형식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나꼼수>의 정치인식에는 일상의 타자들에 대한 배려, 미시정치가 없다”고 말했다. 김어준씨가 시위 방식, 말하는 방식에 대한 ‘자유’를 언급한 데 대해서는 “자유를 지나치게 개인적, 파편적으로 파악했다”며 “스스로 자유의 문제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나꼼수>와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대안언론 <뉴스타파>가 제기 중인 ‘10·26 재·보궐선거 선거방해 의혹’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들의 보도가 ‘음모론’에 집착한 나머지 진보진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광훈 충북대 교수는 “여러 번 추출한 확인된 사실로부터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공적 담론을 이끄는 사람들의 미덕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전성원 편집장은 “언론이 막혀 있거나 정보가 소명되지 않는 상황은 음모론이 활개 치기 좋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어준씨는 오래전부터 이런 ‘놀이문화’를 즐겨온 사람이지만, 정봉주 전 의원, 김용민 PD, 주진우 기자는 맥락을 달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울리면서 양상이 과열됐다”고 말했다. 반면 철학자 강신주씨는 <나꼼수>의 문제제기를 옹호했다. 그는 “전체 한국 지형에서 <나꼼수>는 약자”라며 “팩트는 정권에서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약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해석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꼼수>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문학평론가 오창은씨는 “구조적인 틀 속에서 채계화된 정보 유통 방식을 위반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계속될 것”이라며 “<나꼼수>의 게릴라적 측면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강신주씨는 “언론이 권력, 자본에 붙어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언론이 <나꼼수> 역할을 하면 <나꼼수>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재일 교수는 “<나꼼수>의 역할은 끝났다. <나꼼수>는 오락화됐기 때문에 더 존속된다면 스스로 ‘오락’이라고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문광훈 교수는 “어떤 현상에 병폐가 있다고 그것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나쁜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좋은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당사자들이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대표는 “<나꼼수>는 대안언론이 아니라 언론 악화의 공백을 채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걸 ‘반MB’의 논리로 본다면 ‘반노무현’을 주장했던 과거의 보수언론과 똑같다. 우리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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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둔 주말, 말 안듣는 세탁기를 달래며 빨래를 하다가…

이건 뭔가.

이사를 결정하고 나니, 그동안 가능성으로만 있던 온갖 사건들이 터진다.
온수가 안나오고 세탁기가 말을 안듣고 윗층 총각의 베이스기타 연습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고(그런데 왜 실력은 나아지지 않는 걸까?)….
방도 정을 떼려 하는 건지, 나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려는 건지.
이사를 비롯해 코앞에 닥친 일들 때문에 자꾸 마음이 술렁인다.
지나고 나면 암 것도 아닌 일들.
나는 또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텐데.
* 신형철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반신욕을 하면서 아껴  읽었더니, 어쩔 수 없이 때워야했던 그 시간이 즐거워졌다.
누군가 “이건 애기들거잖아.” 라고 표현했던 작은 욕조속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저자가 이끄는 대로, 그가 펼쳐 보이는 문학의 풍경속에 잠겨 있다보면, 몸도 마음도 둥실 떠오르면서 그의 말대로 한 배를 타고 “느낌의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가는 거 같다.
마지막 장을 덥고 보니 두툼한 책은 수증기를 품어 약간 찌그러져 있고, 내 뇌의 주름에도 촉촉히 스며든 것들에 대한 반응으로 갖가지 말들이 빠작인다.
하나 그것들은 가만히 잠재워두기로 한다. 그의 독법대로, “‘한번 읽기’와 ‘다시 읽기’ 사이의 사유의 시간”을 충분히 만끽해볼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다시 읽은 책이 거의 없구나..)

** 이사하는 방 배치를 그려보다 공간이 조금 남으니 욕심이 생겼다.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이 욕심 많은 어른에게도 산타클로스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면
디지털 피아노를 요청하고 싶다.
어렸을 적엔 피아노가 어찌나 큰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지.
못 배운 피아노에 대한 동경을 평생 간직하셨던 울 어머니는,
가난했던 살림에 장녀였던 언니에게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당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거라 하셨고,
그리하여 나에겐 당신의 그 동경만 물려주셨다.
여건상 기타만 만지작거리면서 (물론 기타도 내게는 아직도 게으름 때문에 가까이 하지 못한 꿈이지만) 막연한 꿈으로만 품었던 피아노를 잊고 있었는데, 이젠 디지털의 권능을 만나 가격도 저렴해졌구나…
산타의 선물로 받을 일은 요원하니, 다음의 지름은 약소하게! 연습용이라는 카시오 CDP-120 이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대책없는 어른의 이 물욕!
누구 말대로 이런 건 정말 오래전에 어떤 식으로든 졸업했어야하는데!, 라고 생각을 했다가,
나름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그 시절이, 그 시절의 동경이, 그리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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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꼼수의 한계는 처음부터 너무나 명확했던 지라 그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지만, 그 한계가 너무 가시화된 지금의 사태는 오히려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정치에 신물이 났던, 철저한 환멸이나 무관심의 대상으로만 정치를 인식했던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유쾌한 방식이 끼친 영향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면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이젠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단 좀 제대로 잘해서 오래 가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 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고 그들의 본질이라고 한다 해도, 결국 진짜 문제는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에서 “희망없음과 정면대결”하지 못하는 우리가 그들의 논리를 기꺼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데 있는 것이므로. 좀 잘했으면 그 한계 속에서도, 그들의 한계를 딛고서도 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  
그저 아쉬움.
**** 월요일 아침이라 여기저기 전화통화로 분주한 가운데 걸려온 070전화. 시사인 구독을 요청하는 전화다.
“주진우 기자 아시지요? 좀 아시는 분 같은데, 아시다시피 작년에 소송건 때문에 많이 어렵거든요. 1년만 구독을 해주시면 저희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믿어지진 않지만) 무작위로 전화를 했다믄서 저렇게 말을 여는 걸 보면 과연 나꼼수의 위력이 상당했긴 했던 모양.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으니, 연이어 씁쓸하고, 안타깝다.
어쨌거나 이미 우리 안에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가지게 된 나꼼수 현상을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입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든 생각.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까…” 혹은 좀 안 좋은 버전으로 “내가 당신같은 사람을 아는데.” 라는 식의 말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생소한 경우, 어렸을 땐 이 사람이 나를 잘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또 한 때는 내가 그에게 나를 다르게 보였나보다, 그가 독해하는 방식으로 나를 보이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체로 그가 나를 만나는 방식이, 내가 그를 만나는 방식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 불일치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것일 수도, 만남에 있어서의 어쩔 수 없는 일치 불가능성, 그 필연적인 괴리를 인식하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일치나 불일치를 말할 수 있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을 요즈음 많이 듣는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략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자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사람들이겠다.
그래도 이 시절에. 꽤 많아진 숫자다.

시절, 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 보며, 내가 살아온 세월의 양을 체감한다.
구분해서 부를 수 있는 시절들을,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낼이 입춘이라던가.

어제는 영하 14도라는 혹한의 날씨에 병원 신축 공사장에 사진촬영을 갔다.
공사현장부터 기록에 남겨 책을 낸다는 그 마인드가 대단했다.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올 수 있는 액션일 것이다.  
사람들이 흘깃거리고 키득거릴 만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내가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중무장을 하고 갔는대도 으~ 신음이 나올만큼 추웠는데, 온기 하나 없는, 골조만 남아 훵하니 뚫린 건물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을 보니 춥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너무 차가워 안전모도 쓰지 못했다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그 모습은 피해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바닥에는 다 비우지 못한 오뎅국이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현장을 나오자 차마 내색못한 추위가 엄습해서 발을 동동거리다, 대박세일을 하는 신발가게에서 털이 송송한 부츠를 충동구매해버렸다. 운동화보다는 확실히 따뜻해서 잠시 뿌듯. 문자로 촬영보고 끝에 자랑질을 했더니 이런 답문이 날라왔다.
“ㅎㅎ 다 추워놓고 이제 신으면 무슨 소용이람”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렇지 뭐.
그래도…  다음 겨울도 추울 것이고, 그 때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어쨌든 벌써 입춘. 이렇게 이 계절이 가는구나.
고작 십대에, 혹은 십대라서, 계절에 무감한 어른은 되고 싶진 않다든가 하는 얘기를 친구와 나누던 생각이 설핏 스친다.
그런데 그런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계절에 무감하기엔, 너무 춥고, 너무 덥구나. -,.-;;
 
 

겨울, 선물 자랑

요가를 배우면서 달라지는 점.
몸이란 걸 삶의 도구가 아닌 내가 보살펴줘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
그리고 호흡이 커졌다는 것.
크게 숨을 들으킬 때 가슴 가득 들어오는 찬 겨울바람이 상쾌하니 좋다.
 
꽁꽁 얼어버린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확연히 달라졌다.
보폭은 좁아지고, 맨질맨질 위협적인 땅바닥과의 마찰은 크게 걸어가는 발걸음들에 힘이 가득 실려있다.
어려운 시절을 건너가는 방법 역시 그와 같지 않을런지.


그리고, 오늘 받은 선물들.
집으로 배달된 시와의 책과 음반, 럭셔리한 긴 여행을 끝내고 나타난 S언니가 건네준 깃털펜,
S언니를 처음 만난 고래동생이 그 기념으로 들고온 책이다.
만나기로한 인사동 장소에 오분 늦게 도착했더니,
두 사람이 이미 서로를 알아보고 마주 앉아 나를 반기고 있어 신기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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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시와”가 쓴 책,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는 만듦새조차 예쁘고 다정한 느낌이 글쓴이를 닮아 있다. 그녀의 노래가 그렇듯.

”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아지는 것, 그것뿐만 아니라, 그 아픔이 나를 죽일 만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아프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낫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 것. …..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행복해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어디 행복이 따라오던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짧은 순간. 그 찰나가 은근한 힘으로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는 내 마음을.”

책에도 시디에도 그녀의 다정한 인사와 싸인이 있고,
지난 번 인터뷰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이 들어간 곳엔 핑크빛으로 마킹이 되어 있다.
팬으로서 좋지 아니할 수가 없겠다. 흐흐.  
아직 슬쩍 넘겨봤을 뿐이지만, 추운 계절을 건너가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그녀의 바램대로) “스며드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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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기로 했다.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다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자꾸만 숨어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그 때문에, 그에 반해 내린 결정이다.

그렇게 좀 더 세상속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사하는 거리 딱 그만큼만.
장차 멀리 달아나기 위한, 먼 후퇴를 위한 짧은 전진.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궁극적 지향의 측면에선 전진을 위한 후퇴다.

반나절만에 내린 결정이 잘한 짓인지 자꾸만 마음이 흔들려 이렇게 되뇌고 있다.

어차피 잠시의 거처인 것을, 너무 진지한 거 아냐? 라는 힐난도 보내고 있다.  

어쨌든, 담달에는 이사를 갈 것이다.

꿈이 버라이어티해진다.

어릴 때부터 워낙 꿈을 많이 꾸는 편이긴 했지만 주로 시각적으로만 감지되던 꿈이 점차로 다른 감각들을 깨우며 내 무의식을 끌어간다. 꿈 속에서 나는 촉각을 비롯하여 보다 확장되고 생생한 감각으로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대화한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거리가 좁혀지고 서로 다정해지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이런 날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엔 가슴팍이 늘상 까슬거린다.
대개 너무나 사소한 입장과 의견 차이로 순간적으로 대화가 단절되면서 아득하게 멀어진 관계의 거리가 재빠르게 은폐되었다가, 그 균열이 복구되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내 안의 반응이다.
그 반응을 들여다보면 참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까슬거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대개가 드러내기도 민망한 찌질함과 소심함이다. 꽤 오랫동안 따가워서 가벼운 처방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사안이나 관계의 특성상 대개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원상복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당당해져야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그 균열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좀 더 의연해져야 한다. 나를 믿고!
이런 면에선 정말 닮고 싶어지는 누군가가 있다.
오늘 같은 날 꽤나 탐나는 그의 그러한 매력은 엊그제 만났던 K의 표현대로 정말 “쩐다”

바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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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곳에 일을 받으러 가서 미팅을 기다리다 들여다본 내 열쇠고리.

그런데 두 개의 열쇠의 정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난 무엇을 걸어 잠그고 열 생각도 못하고 잊고 있는 걸까?
작업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USB 메모리에 데이타를 넣고선 얼릉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다행히 선물 상자가 없다. 명절 때마다 손에 쥐어주는 비누와 세제 선물세트가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더이상 인기가 없었나보다.
대신 회식 한 번 할 때 부르겠다고, 허리를 깊이 숙여 설인사를 한다. 아직도 쌓여 있는 비누와 삼푸 세트가 반갑지 않기는 했지만, 그 곳의 회식이라는 게 그닥 재밌을 거 같지는 않아 내키지는 않지만, 나름 회사대표의 깍듯한 태도와 명절을 챙겨주는 마음씀은 나쁘지 않다.  
(기어이 선물 챙겨가라는 전화를 어제 받았었는데 술마시고 있느라 받지 못했다. 명절 끝나고 받기루 했는데 이번에는 이왕이면 좀 다른 선물이길.)
명절을 앞두고 또 할 일이 쌓였다. 이상하게도 명절 때면 꼭, 바쁘고 가난하다.
일이 의외의 변수로 자꾸 어렵게 풀려간다.
바꾸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轉業, 我, 生하고 싶다.
(음 다 때려치고 싶다, 에 비하면 어찌나 건전한지…
)

wrong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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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야 하는 길이 있음을 알겠다.

외면해야하는 마음길이 있음도 알겠다.
잘못 떠난 길, wrong way-진입금지의 이정표 앞에서라도,
서성임 없이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돌아서 온 길, 까맣게 잊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리하지 못하여 슬픔속에 깜빡 잠기게 되더라도,
“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일임을 알겠다.
* 요가를 시작했다. 오래 전에 시도했다 포기했을 때에 비해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용쓰는 것이 안쓰러운데 마음은 차분해진다.
이번엔 제대로 몸에 익혀봐야겠다.
돌아와 착하게 반신욕을 하면서 들쳐본 책에서 시 한 편이 꽂힌다.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때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 최정례, <칼과 칸나꽃>중에서 / via 신형철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책읽기

“중학교 갈 때까지 책읽기를 강요하지 않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들이 어른 몰래 책을 보고 ‘책을 맘껏 볼 열다섯살을 기다리며 사노라’라고 일기장에 쓰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씨의 말이란다.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걸 경쟁하듯 강박적으로 행하는 젊은 부모들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끄덕. 그리고 이 발상 ^^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에 책이 없었다.
어쩌다 생긴 열 몇권짜리 명작전집 하나. 그걸 아껴 읽고 나니 뭔가 읽고 싶은데 동네 도서관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으니 책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 급기야 직접 노트에 동화를 끄적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 하나 정도는 어슴프레 기억이 나는데, 심히 꿀꿀하다.)
소설이나 위인전 같은 걸 보면 이럴 때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친척집이나 친구집이 등장하는데 내 인생엔 그런 것도 없었다. (이 대목은 좀 아쉽다. 그랬으면, 예를 들면 P선생 같은 사람을 친구로 만났더라면,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ㅎ)
원하는 걸 사달라고 조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아빠의 구두를 닦고 용돈을 받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 달째 되는 날, 문고판 책 하나 정도 살 돈을 받아 서점으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 날 듯이 가벼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서점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고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신중하게 골라준 책이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그렇게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의 구두를 열심히 닦고서 매달 월례 행사로 서점엘 달려갔다. 책을 고르는 안목도 제법 나아져갔다. 한 달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그 서점 아저씨가 생각난다. 워낙 어렸던 데다 몸집도 작아 눈에도 잘 안띄었을 꼬마의 소원풀이 월례 행사를 함께 해주었던 친절한 아저씨.
크리스마스엔 카드도 직접 만들어 가지고 갔다. 부끄러워 카드를 전해주고 후다닥 달려나오느라 아저씨의 반응도 보지 못했다. 꽤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를 좋아하기도 했나보다.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동네 길목에서였다. 누가 저기서 걸어오면서 나를 알아보고 씨익 웃어보이는데 나는 조금 놀라 웃지를 못했다. 아저씨가 다리를 꽤 절고 있는 걸 보았고 ‘아저씨는 틀림없이 저러한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서점 안에서 봤을 때는 내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게 그 근거였다. 그래서 아저씨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 물론 철부지 아이의 터무니 없는 오바. 장애에 대한 생각은 다니던 교회의 영향을 받았었을 테고. 어쟀든 내려다 보지 않으면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을 꼬맹이가 안중에도 없었을 터. ㅎㅎ
그리고 나서 이사를 갔고 들어간 학교엔 학급문고가 있어서 룰루랄라.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장래희망이 서점주인이었다. 서점을 차리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다른 서점 아저씨의 말을 듣고 좌절할 때까지.
그리하여 내 소원도 한 때 “책을 맘껏 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라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맘껏 책을 볼 수는…. 없다. 어른이 되었어도 뭔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한다는 게 쉽지 않으므로, 라는 건 또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 것이다. 확실히 어렵게 책을 손에 넣었던 유년시절이나 몰래 몰래 읽었던 학창시절보다도 독서량이 훨 적고 그 설레임과 흥분과 행복감도 많이 사그라졌다.
그래도 당장 손에 쥐고 빠져들 수 있는 책이 내 방안에 널려 있다는 건 즐겁고 다행한 일이란 걸 안다.
그것이 책을 맘껏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