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든 생각.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까…” 혹은 좀 안 좋은 버전으로 “내가 당신같은 사람을 아는데.” 라는 식의 말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생소한 경우, 어렸을 땐 이 사람이 나를 잘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또 한 때는 내가 그에게 나를 다르게 보였나보다, 그가 독해하는 방식으로 나를 보이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체로 그가 나를 만나는 방식이, 내가 그를 만나는 방식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 불일치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 것일 수도, 만남에 있어서의 어쩔 수 없는 일치 불가능성, 그 필연적인 괴리를 인식하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일치나 불일치를 말할 수 있는 나의 실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을 요즈음 많이 듣는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략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자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사람들이겠다.
그래도 이 시절에. 꽤 많아진 숫자다.

시절, 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 보며, 내가 살아온 세월의 양을 체감한다.
구분해서 부를 수 있는 시절들을,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낼이 입춘이라던가.

어제는 영하 14도라는 혹한의 날씨에 병원 신축 공사장에 사진촬영을 갔다.
공사현장부터 기록에 남겨 책을 낸다는 그 마인드가 대단했다.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성공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올 수 있는 액션일 것이다.  
사람들이 흘깃거리고 키득거릴 만큼,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내가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중무장을 하고 갔는대도 으~ 신음이 나올만큼 추웠는데, 온기 하나 없는, 골조만 남아 훵하니 뚫린 건물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을 보니 춥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너무 차가워 안전모도 쓰지 못했다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그 모습은 피해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바닥에는 다 비우지 못한 오뎅국이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현장을 나오자 차마 내색못한 추위가 엄습해서 발을 동동거리다, 대박세일을 하는 신발가게에서 털이 송송한 부츠를 충동구매해버렸다. 운동화보다는 확실히 따뜻해서 잠시 뿌듯. 문자로 촬영보고 끝에 자랑질을 했더니 이런 답문이 날라왔다.
“ㅎㅎ 다 추워놓고 이제 신으면 무슨 소용이람”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렇지 뭐.
그래도…  다음 겨울도 추울 것이고, 그 때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어쨌든 벌써 입춘. 이렇게 이 계절이 가는구나.
고작 십대에, 혹은 십대라서, 계절에 무감한 어른은 되고 싶진 않다든가 하는 얘기를 친구와 나누던 생각이 설핏 스친다.
그런데 그런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계절에 무감하기엔, 너무 춥고, 너무 덥구나. -,.-;;
 
 

겨울, 선물 자랑

요가를 배우면서 달라지는 점.
몸이란 걸 삶의 도구가 아닌 내가 보살펴줘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
그리고 호흡이 커졌다는 것.
크게 숨을 들으킬 때 가슴 가득 들어오는 찬 겨울바람이 상쾌하니 좋다.
 
꽁꽁 얼어버린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확연히 달라졌다.
보폭은 좁아지고, 맨질맨질 위협적인 땅바닥과의 마찰은 크게 걸어가는 발걸음들에 힘이 가득 실려있다.
어려운 시절을 건너가는 방법 역시 그와 같지 않을런지.


그리고, 오늘 받은 선물들.
집으로 배달된 시와의 책과 음반, 럭셔리한 긴 여행을 끝내고 나타난 S언니가 건네준 깃털펜,
S언니를 처음 만난 고래동생이 그 기념으로 들고온 책이다.
만나기로한 인사동 장소에 오분 늦게 도착했더니,
두 사람이 이미 서로를 알아보고 마주 앉아 나를 반기고 있어 신기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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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시와”가 쓴 책,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는 만듦새조차 예쁘고 다정한 느낌이 글쓴이를 닮아 있다. 그녀의 노래가 그렇듯.

”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아지는 것, 그것뿐만 아니라, 그 아픔이 나를 죽일 만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아프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낫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 것. …..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행복해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어디 행복이 따라오던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짧은 순간. 그 찰나가 은근한 힘으로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하는 내 마음을.”

책에도 시디에도 그녀의 다정한 인사와 싸인이 있고,
지난 번 인터뷰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이 들어간 곳엔 핑크빛으로 마킹이 되어 있다.
팬으로서 좋지 아니할 수가 없겠다. 흐흐.  
아직 슬쩍 넘겨봤을 뿐이지만, 추운 계절을 건너가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그녀의 바램대로) “스며드는”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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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기로 했다.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다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자꾸만 숨어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그 때문에, 그에 반해 내린 결정이다.

그렇게 좀 더 세상속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사하는 거리 딱 그만큼만.
장차 멀리 달아나기 위한, 먼 후퇴를 위한 짧은 전진.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궁극적 지향의 측면에선 전진을 위한 후퇴다.

반나절만에 내린 결정이 잘한 짓인지 자꾸만 마음이 흔들려 이렇게 되뇌고 있다.

어차피 잠시의 거처인 것을, 너무 진지한 거 아냐? 라는 힐난도 보내고 있다.  

어쨌든, 담달에는 이사를 갈 것이다.

꿈이 버라이어티해진다.

어릴 때부터 워낙 꿈을 많이 꾸는 편이긴 했지만 주로 시각적으로만 감지되던 꿈이 점차로 다른 감각들을 깨우며 내 무의식을 끌어간다. 꿈 속에서 나는 촉각을 비롯하여 보다 확장되고 생생한 감각으로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대화한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거리가 좁혀지고 서로 다정해지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이런 날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엔 가슴팍이 늘상 까슬거린다.
대개 너무나 사소한 입장과 의견 차이로 순간적으로 대화가 단절되면서 아득하게 멀어진 관계의 거리가 재빠르게 은폐되었다가, 그 균열이 복구되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내 안의 반응이다.
그 반응을 들여다보면 참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까슬거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대개가 드러내기도 민망한 찌질함과 소심함이다. 꽤 오랫동안 따가워서 가벼운 처방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사안이나 관계의 특성상 대개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원상복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당당해져야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그 균열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좀 더 의연해져야 한다. 나를 믿고!
이런 면에선 정말 닮고 싶어지는 누군가가 있다.
오늘 같은 날 꽤나 탐나는 그의 그러한 매력은 엊그제 만났던 K의 표현대로 정말 “쩐다”

바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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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곳에 일을 받으러 가서 미팅을 기다리다 들여다본 내 열쇠고리.

그런데 두 개의 열쇠의 정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난 무엇을 걸어 잠그고 열 생각도 못하고 잊고 있는 걸까?
작업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USB 메모리에 데이타를 넣고선 얼릉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다행히 선물 상자가 없다. 명절 때마다 손에 쥐어주는 비누와 세제 선물세트가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더이상 인기가 없었나보다.
대신 회식 한 번 할 때 부르겠다고, 허리를 깊이 숙여 설인사를 한다. 아직도 쌓여 있는 비누와 삼푸 세트가 반갑지 않기는 했지만, 그 곳의 회식이라는 게 그닥 재밌을 거 같지는 않아 내키지는 않지만, 나름 회사대표의 깍듯한 태도와 명절을 챙겨주는 마음씀은 나쁘지 않다.  
(기어이 선물 챙겨가라는 전화를 어제 받았었는데 술마시고 있느라 받지 못했다. 명절 끝나고 받기루 했는데 이번에는 이왕이면 좀 다른 선물이길.)
명절을 앞두고 또 할 일이 쌓였다. 이상하게도 명절 때면 꼭, 바쁘고 가난하다.
일이 의외의 변수로 자꾸 어렵게 풀려간다.
바꾸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轉業, 我, 生하고 싶다.
(음 다 때려치고 싶다, 에 비하면 어찌나 건전한지…
)

wrong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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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야 하는 길이 있음을 알겠다.

외면해야하는 마음길이 있음도 알겠다.
잘못 떠난 길, wrong way-진입금지의 이정표 앞에서라도,
서성임 없이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돌아서 온 길, 까맣게 잊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리하지 못하여 슬픔속에 깜빡 잠기게 되더라도,
“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일임을 알겠다.
* 요가를 시작했다. 오래 전에 시도했다 포기했을 때에 비해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용쓰는 것이 안쓰러운데 마음은 차분해진다.
이번엔 제대로 몸에 익혀봐야겠다.
돌아와 착하게 반신욕을 하면서 들쳐본 책에서 시 한 편이 꽂힌다.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때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 최정례, <칼과 칸나꽃>중에서 / via 신형철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책읽기

“중학교 갈 때까지 책읽기를 강요하지 않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들이 어른 몰래 책을 보고 ‘책을 맘껏 볼 열다섯살을 기다리며 사노라’라고 일기장에 쓰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씨의 말이란다.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걸 경쟁하듯 강박적으로 행하는 젊은 부모들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끄덕. 그리고 이 발상 ^^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에 책이 없었다.
어쩌다 생긴 열 몇권짜리 명작전집 하나. 그걸 아껴 읽고 나니 뭔가 읽고 싶은데 동네 도서관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으니 책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 급기야 직접 노트에 동화를 끄적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 하나 정도는 어슴프레 기억이 나는데, 심히 꿀꿀하다.)
소설이나 위인전 같은 걸 보면 이럴 때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친척집이나 친구집이 등장하는데 내 인생엔 그런 것도 없었다. (이 대목은 좀 아쉽다. 그랬으면, 예를 들면 P선생 같은 사람을 친구로 만났더라면,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ㅎ)
원하는 걸 사달라고 조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아빠의 구두를 닦고 용돈을 받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 달째 되는 날, 문고판 책 하나 정도 살 돈을 받아 서점으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 날 듯이 가벼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서점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고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신중하게 골라준 책이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그렇게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의 구두를 열심히 닦고서 매달 월례 행사로 서점엘 달려갔다. 책을 고르는 안목도 제법 나아져갔다. 한 달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그 서점 아저씨가 생각난다. 워낙 어렸던 데다 몸집도 작아 눈에도 잘 안띄었을 꼬마의 소원풀이 월례 행사를 함께 해주었던 친절한 아저씨.
크리스마스엔 카드도 직접 만들어 가지고 갔다. 부끄러워 카드를 전해주고 후다닥 달려나오느라 아저씨의 반응도 보지 못했다. 꽤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를 좋아하기도 했나보다.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동네 길목에서였다. 누가 저기서 걸어오면서 나를 알아보고 씨익 웃어보이는데 나는 조금 놀라 웃지를 못했다. 아저씨가 다리를 꽤 절고 있는 걸 보았고 ‘아저씨는 틀림없이 저러한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서점 안에서 봤을 때는 내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게 그 근거였다. 그래서 아저씨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 물론 철부지 아이의 터무니 없는 오바. 장애에 대한 생각은 다니던 교회의 영향을 받았었을 테고. 어쟀든 내려다 보지 않으면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을 꼬맹이가 안중에도 없었을 터. ㅎㅎ
그리고 나서 이사를 갔고 들어간 학교엔 학급문고가 있어서 룰루랄라.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장래희망이 서점주인이었다. 서점을 차리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다른 서점 아저씨의 말을 듣고 좌절할 때까지.
그리하여 내 소원도 한 때 “책을 맘껏 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라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맘껏 책을 볼 수는…. 없다. 어른이 되었어도 뭔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한다는 게 쉽지 않으므로, 라는 건 또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 것이다. 확실히 어렵게 책을 손에 넣었던 유년시절이나 몰래 몰래 읽었던 학창시절보다도 독서량이 훨 적고 그 설레임과 흥분과 행복감도 많이 사그라졌다.
그래도 당장 손에 쥐고 빠져들 수 있는 책이 내 방안에 널려 있다는 건 즐겁고 다행한 일이란 걸 안다.
그것이 책을 맘껏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인디언식 이름

“날카로운 달빛의 혼”

나의 인디언식 이름이란다.
뭔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주술적 능력이나 예지의 힘 같은 것이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흐흐
그랬으면 좋겠네…

<인디언식 이름짓기>

태어난 년도 뒷자리 자신의 생월 자신의 생일
***0년생:시끄러운,말많은
***1년생:푸른
***2년생:어두운 →적색
***3년생:조용한
***4년생:웅크린
***5년생:백색
***6년생:지혜로운
***7년생:용감한
***8년생:날카로운
***9년생:욕심많은
1월:늑대
2월:태양
3월:양
4월:매
5월:황소
6월:불꽃
7월:나무
8월:달빛
9월:말
10월:돼지
11월:하늘
12월:바람
1일:~와(과) 함께 춤을
2일:~의 기상
3일:~은(는) 그림자 속에
4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5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6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7일:~의 환생
8일:~의 죽음
9일:~아래에서
10일:~을(를) 보라
11일:~이(가) 노래하다.
12일:~의 그늘 → 그림자
13일:~의 일격
14일:~에게 쫒기는 남자
15일:~의 행진
16일:~의 왕
17일:~의 유령
18일:~을 죽인 자.
19일:~은(는) 맨날 잠잔다.
20일:~처럼..
21일:~의 고향
22일:~의 전사
23일:~은(는) 나의 친구
24일:~의 노래
25일:~의 정령
26일:~의 파수꾼
27일:~의 악마
28일:~와(과) 같은 사나이
29일:~의 심판자→을(를) 쓰러트린 자
30일:~의 혼
31일:~은(는) 말이 없다

그림자

“어린 아이는 뜨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몸집이 작은데도 큼직한 그림자가 앞서가고 있다. 그것이 그의 미래인데, 입을 딱 벌리고 있지만 또한 납작하게 눌려진, 약속과 위협으로 가득 찬 동굴이다. …… 정오가 되면 해는 남중하고 그림자는 어른의 발밑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완성된 인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미래 같은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아직은 그의 과거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등 뒤에 그림자가 생겨나서 점점 길어진다. 이제부터 그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추억들의 무게를 발뒤축에 끌고 다닌다. 그가 사랑했다가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보태지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과거의 덩치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뒤에 달린 그림자가 너무 무거워져서 걸음을 멈추어야 되는 날이 온다. 그러면 그는 사라져 버린다. 그는 송두리째 그림자로 변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맡겨진다.’

                                                                                        – 미셀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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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나를 지키는 건 나 혼자 강해지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말할 때,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꽤나 상처받았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 대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해하고자하는 안간힘이, 현실로 인식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시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모순된 진술 속에서 대상에 대한 양가 감점은 너무나 역력했고 그래서 가여웠다.

그런 그녀를 잠시 토닥여주다 돌아서서 든 생각.
그러한 격렬한 양가 감정. 그게 사실 타인에 대한 사랑의 본질인 거지.
그녀는 이제 아니라 말하지만, 초연해졌다 말하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지지 않은 게지.
타인에 대해 그만큼 분노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뭐 타고난 성향도 처한 입장도 좀 다르긴 하지만.)        
오늘 점심 약속으로 집을 나설 때까지 며칠 동안 모니터 앞에 틀어박혀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밥먹고 잠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다, 뉴스를 들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전화를 받으면서도 일을 했다.
그 결과는…. 일이 정말 하기 싫어졌다.
어깨며 등이 아파 움찔거리면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나고, 한쪽 팔은 끝까지 올라가질 않는다.
으아악~ 혼자 짧은 비명을 내밷다 나의 귀책사유가 아닌 이유로 자꾸 엄한 일을 되풀이해서 만들어보내는 담당자에게 “저에게 자꾸 왜 이러시는 거에요?” 라는 하소연을 하고 나니, 이제는 먹고 살 걸 해결해주는 남자가 있으면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팻이라도 될 수 있겠다 했던 K선생 말이 생각났다. -,.-;;
 
사람이 무엇이라도 일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던 누군가의 말에는 정말 공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 뿌듯한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무래도 천성적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녀처럼 일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게 부러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  
일 멀미가 나는(진짜 멀미 증상이 난다. T.T) 지금은 잠시, 쉴 때가 되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