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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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기륭에 이어 쌍용이 그 세 번째 슬픈 이름이 되었다.

이런 슬픈 이름을 담은 달력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잠시 품어봤었지만…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나의 “최소한”은 너무 작구나.

http://choisohan.egloos.com/

전시 소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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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들을 소개한 이는 두 장소가 가까우니 꼭 함께 보라는 당부를 날렸는데, (그 이유가 같은 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그 방법을 추천한다.

첫 번째 전시는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보면 더 재미었을 텐데, 밀린 일 때문에 괜히 마음 조급하여 그리 하지 못해 아쉬운 감이 있다.

두 번째 전시 장소는 수유너머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까페가 장소. 찾기가 약간 까다로우니 미리 지도나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것이 좋겠다.    
전시 내용에 대해선…. 말을 줄인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she—- we 라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단어 외에 어떤 언어화된 표현도 생각나지 않았던 전시였다고만 적는다.  
 
금욜날인가에 갔더니 마침 빵굽는 수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데 한 조각도 얻어먹지 못해서) 약간 슬펐다.
그래도 배고픈 상태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우리가 그리 불쌍해보이지는 않는가 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흐.

문득, 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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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고 있다 문득 생각났다, 이 풍경이 아스라한 유년의 느낌을 솔솔 풍기는 이유.

<엠마오 문방구>를 하던 주인집에 세들어 살던 때가 있었다. 이름은 문구점이었지만 저것과 모양은 좀 다른 뽑기 기계와, 윙하는 소리를 내는 기계에서 뽑아내던 브라질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온갖 군것질 거리가 있는 그런 문구점옆에 집이 붙어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라고 하기엔 성격이 안맞아 그리 친하지는 못했던 주인집 딸내미도 생각난다.
시대가 그러한 지라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 주제에 나름 주인집 딸의 권력을 행사한다고 내게 제 숙제를 강요하던 아이. 물론 강요한다고 해서 해준 거는 아니었지만.
하루는 내가 대신 해준 숙제가 큰 칭찬을 받았다며 기분이 좋아져 아이스크림인가를 공짜로 주었고, 그 담날엔 내가 거절하자 화를 냈다. 그리곤 삼사일 정도를 못본 체 하고 지내다 결국 먼저 말을 걸어오는 그 아이를 보며 속으로 좀 오만하게, “그래, 아쉬운 건 너지” 중얼거리던 기억도 난다.
그보다 더 선명한 기억 하나는 그 집 옥상에서 보던 하늘빛. 이 담장 그림에서처럼, 꼭 이런 빛깔로 저 먼곳에서 조금씩 스며들어오는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다 눈물이 나던 기억.
* 누군가의 잃은 것과 얻은 것, 에 대한, 먼 곳에서 날아온 문자를 받고서 인어공주의 목소리와 다리가 다시 생각났다.
그 때 일은 지금도 아쉬운데, 어쩌면 지금도 매일매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인어공주의 목소리와 같은 무언가를 잃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처럼 나의 총기-대충 대신 해준 숙제도 칭찬을 받던-도 조금씩 사그라져가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 대신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삶을 잃어가고, 그 “지나간 자리”엔 “기억”이 남아….  
** 일을 하며 틀어놓은 TV에서 한미 FTA에서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걸 듣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것들을 잃게될, 우리네 삶의 많은 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 거래라는 생각에 오싹해진다.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던 플랭카드의 물방울 무늬가 섬뜩해보인다. -,.-;;  
***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 해야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날이 언제였던가. -..-

으아… 오늘도 잠이 안와.

불면의 시간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문학, 철학, 혹은 예술 등의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텐데, 뭔가 주워들었을 법도 한데,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없이 빠작거리는 사소한 생각들, 기억들, 생각을 멈추고 어서 자야한다는, 내일에 대한 강박.  
며칠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잠이 덜 깬 채로 멍하다가 밤에 일찍 반신욕을 하고서 잠이 설핏 들었는데, 한시간 만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내일 일에 대한 간단한 뭔가를 묻는 전화였다. 그리고선 말똥말똥.
정신없이 빡빡했던 일정이 끝나고 몸이 좀 편해져서 그런가. 이제 달콤한 잠은, 고달픈 일과에 대한 보상으로만 주어지려 하는 것일까.
그 며칠간 잠을 청하며 이불 속에서 한두 시간을 뒤척거리다 영 안되겠다 싶어 일어나면, 물을 끓여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우유 등을 데워 마시며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읽었다.
글씨가 깨알같던 1998년 판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에 수록된 것이다. (사실 이런 책은 내 책장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아 처분되었기 때문) 게다가 이런 제목이면 수면을 부르기에 적절할 수 있었을 텐데.
페이지수가 많지 않지만 행간이 길었던 이 텍스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미래가 지니는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에게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간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門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내일, 아니 오늘 일요일은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이 있다. 여러 시간 긴장이 필요한 일이 끝나면 맥주나 한 잔 마시고 혼곤한 잠을 청해봐야겠다.  

라면

오랫만에 라군을 만났다.

나한테 미안한게 좀 있다고 맛난 걸로 보상하겠다는 맘을 단단히 먹고 나온 게 기특해서, 저녁을 먹고 만났음에도 배부르게 열심히 먹어주었다. 처음 메뉴판을 보고 만장일치로 결정한 건 나가사끼 짬뽕.
집에서 먹던 것과 비교해보자는 심사였는데, 삼양라면이 그 맛을 구현하는데 대체로 성공했다는 결론.
라군 : 요즘엔 나가사끼 짬뽕만 먹어. 꼬꼬면과 대결을 시켜봤는데 나가사끼의 판정승. 꼬꼬면은 맛이 좀 심심하더라구.
나 : 나도 그래. 근데 말야…. 어쩜 내가 말하던 거랑 똑같이 말하냐? 꼬꼬면과 대결, 나가사끼의 승리
라군 : 혹시 이전엔 너구리 먹었어?
나 : 어. 거의 너구리만 먹었지.
그래서 알았다. 만난 지 십년이 훨 넘고서도, 자주 보지도 않으믄서 이 친밀감이 유지되는 이유.
우리가 라면 취향이 똑같다는 거.
기분이 좋아 삼양 나가사끼 짬뽕에 콩나물을 넣어 먹으면 훨 훌륭해진다는 비법을  알려줬다.  
풀무원에서 나온 3번 씻어 나온 콩나물을 사면 세척의 귀찮음도 피해갈 수 있다는 노하우까지.  

2011 서울사진축제 워크숍

호객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는, 그러나 상업성은 없는 <광고> 

2011 서울사진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http://seoulphotofestival.com/ 잘 보시면 경희궁 분관과 서소문 본관에서 아주 많은 작품들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재밌는 작품들이 꽤 있답니다.
중요한 건 워크숍.
http://phototopos.blog.me 에 정보가 있습니다.
사실 무쟈게 재밌다고 말하기는… 제가 여기 일을 하고 있는지라… 좀 찔림이 있습니다만,
시립미술관이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는 덕수궁 뒷담길에 이어져 있는 고로,
일요일 아침에 어디 바람 쐬러 갈 데 없나 두리번 거리시는 분이 있다면
한 번 산책을 나오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전시도 둘러보시구요.
서울시민을 위한 서울사진축제이니만큼 여러분의 권리를… 행사해주세요.
워크숍 강의는 무료로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서울시민 아니어도 외국인도 어른아이노인 누구나.
오셔서 아는 척 해주시면 제가 반갑게 인사해드립니다.^^
강의는 11시와 2시에 시작합니다.
<미술의 역사적 저변과 사상을 통해 살펴보는 현대미술(윤우학 / 충북대 교수, 미술평론가)과 <사진을 넘어서 (민병직 /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입니다.
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원에서도 <소통의 기술>이라는 볼 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무료가 아닌듯)
마음이 헛헛해지는 가을, 한 큐에 다 보셔도… 좋지 아니하겠습니까?  -,.-;;

사진을 고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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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다니고 있는 이번 소외지역 순회공연에서는 장애인시설만 세 곳.

한두시간 머물며 공연을 촬영했을 뿐이지만 각각의 장소가 남긴 인상은 꽤 강하다.
그 중 마지막 다녀온 이곳은 규모도 그렇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한 가족같은 곳이다. 꽃미남 아카펠라 그룹 EXIT의 공연도 큰 몫을 했다. 노래중 자기 이름이 불려지자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푹 박고 들지 못하던 여학생 뿐만이 아니다. 오랫만에 안구정화했다며 환호하던 학생들의 엄마들에게서 장애인아이를 둔 어미의 비통함(말아톤인가 하는 영화의 장면으로 떠오르는)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장앤시설이든, 농산어촌, 다문화 가족이든, 일명 “소외계층”(이라 분류된 이들)을 촬영하는 일엔 사실상 조심스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좋아 대체로 촬영은 수월했다. 아이들, 어르신들은 내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특히 장애학교 아이들은 나를 다짜고짜 껴안거나 손을 잡아끌고 친구를 인사시키기도 했다.
물론 카메라를 카메라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 교정시설은 물론이었고 장애인시설 중에서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엔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리 밝지 못했다. 카메라 자체가 좀 폭력적이긴 하지만, 나 자신도 사진찍히는 걸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보호”하는 이들이 “보호”를 이유로 촬영에 제한을 둘 경우가 더욱 그랬다. 그런 날 돌아오는 길엔 어깨에 맨 카메라 가방의 무게가 1.5배 정도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이 없는가, 아닌가 라는 것이 어떤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소외계층”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당당하고 건강한 모습은 훈훈하고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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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땅 외진 지역의 학교, 도시의 임대주택 공터에서 열린 마당극을 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 예쁘고, 꽃미남 오빠들에 열광하는 장애학생들의 얼굴은 또다른 농도가 더해진 깊이로 환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자꾸 잡았던 이들은 카메라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오히려 즐기던 장애 학생들의 어머니들.
그 당당하고 쾌활한 어머니들의 존재는 아이들을 더욱 더 사랑받고 사랑하는 아이들로 보이게 만들었음을 사진에서 다시 확인한다.
(이들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 건, 아무래도 내 능력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지만, 편견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내가 보았던 대상이 가진 그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왜곡없이 사진으로 올곧게 드러나게 한다는건… 이런 한 순간의 행사사진이 아니라 더 좋은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

아름다운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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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김진숙, 김여진, 그리고 다시 보게된 정은임(2003년 10월 22일 방송)

놀랍도록 멋지고 아름다운 여인들.
그 아름다움이… 눈물겹다.

프로젝트의 현실이라…

http://raimine.egloos.com/1030738   – via @goodgle

이런 유머(라고도 말하기엔 너무 리얼하지만)에 이리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참 슬픈 일이로세.  
그런데 이렇게 적당히 자조하고 처지를 공감하면서 느끼는 묘한 쾌감과 나름의 승화가 있다는 거! 흐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몇몇 젊은 이들은 말하자면 이런 “프로젝트”의 맛을 모른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보자면 사회에서 “일”을 해도 수년은 해봤을 나이지만, 어떤 특별한 환경속에서 제대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고로,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툴툴댄다. 힘들어 죽겠다는 그 하소연을 듣다보면 그 사소함에 좀 놀라고, 어느 부분에서 힘든 건지 이해를 못해 대화는 두리뭉실, 헐거워해진다. 그들 삶의 맥락으로 보자면 안쓰럽기도 하고 연민도 갈 수 있는 일이지만, 공감의 포인트와 타이밍을 찾는 일이 또 쉽지가 않다.
그럴 때 체감한다. 저러한 프로젝트의 현실이 우리를 얼마나 단련시켜온 것인지.
그렇게 단련되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라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 물론 이 땅의 안타까운 현실의 일면인 건 맞지만,
이럴 때 나는 내가 일찍부터, 그리고 지금 이 정도 단련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라 느낀다.
물론 아주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본다면, 평생 그렇게 단련될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한 부러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뭐 어쩌다가는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요즘처럼 벌여놓은 일이 많아 정신이 혼미해지고 육체의 한계를 자꾸 느끼게 되는 때에는.
(어젯밤엔 야심한 시각에 술먹고 전화한 모군의 공로도 한 몫!)
피곤하면 이명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더니 같이 일하던 녀석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온 증상과 똑같다고 겁을 준다. 처방은 멍멍이탕. 뭐든 잘 먹긴 하지만 멍멍이탕은 흐미~

* 떠오르는 그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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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런스 S. 라우리,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 1930

 … 영국 랭커셔 태생 화가 로렌스 S. 라우리(1887~1976)는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죽자 라우리는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밤마다 어머니가 잠든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 화가는 이렇게 회상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한장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우리는 1910년 한 부동산회사의 임대료 징수원으로 취직해 42년 동안 장기근속하며 미술 활동을 병행했다. 라우리가 30대에 발견해 말년까지 꾸준히 천착한 화재(畵材)는 평생 살았던 20세기 잉글랜드 북부 공업 도시였다. 그는 본인과 이웃의 생활을 통해 노동이 무엇인지 익히 아는 화가였다.

   – 김혜리 그림산문집, <그림과 그림자> 중에서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자신이 ‘주말 화가’로 업신여김을 당할까 봐 우려한 그가 친구들에게도 따로 자기직장이 있음을 비밀로 했다는 것. 생계를 위해 불평도 하지 않고 장기근속을 하면서 도시와 그 속의 노동계급을 “연민”없이 묵묵히 그려낸 그에게는 뭔가 “강건”해보이는 짠한 매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민같은 것이 일렁이게도 만든다.
확실한 건 “구구절절 불평”도 하고 떠들썩하게 처지를 공감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며 위안도 얻는 우리는, 저러한 고독한 예술가는 될 수 없다는 거.  

우울한 하루.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우울했던 하루.

이런 저런 자책과 반성이 엊그제 강남을 강타했다는 하루살이떼마냥 머릿속을 윙윙거리고
가슴엔 찬 바람이 쌩쌩거리더니,
상비약을 사러 약국엘 들렀다 오는 길에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발열기능이 있다는 내복과 양말 두 컬레, 포근한 겨울잠옷.
이그. 겨울이 뭐 얼마나 길다고, 찬바람 얼마나 맞을 거라고 엄살은…
참 오랫만에 동물원의 <씽씽씽>을 듣는다.
올 겨울 그리 많이 춥지 않기를. 혹 추운날 오더라도 우리의 온기 많이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