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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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끼던 노란 이불이 타닥타닥 소각되던 때 부터였으니 꽤 오래 되었다. 노란 색상이 내게 애도, 그리움의 빛깔로 자리잡은 것이.
한데 노란 빛깔이 불러 일으키는 그 애도와 슬픔의 정서가 이젠 이 땅에선 너무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이미지 타이틀 백그라운드에 노란색의 코드를 입력하며 떠올렸다.
벌써 1주기가 되었다.

떠나간 이들과 온갖 떠나간 것들이 현재로 소환되는 계절.
비는 추적추적 오고
이제는 떠나보내야할 것들도 줄을 서니,
올해도 알콜 없이 연말을 보내기는 어렵겠다.
남은 2016의 날들은 막 살아야지.
처절한 반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 얄님의 블로그에서 한 귀절.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했다. “생은 각자의 생이다. 그래서 생에 대해 진지하게 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속에서부터, 유일무이한 자기 내면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논한다는 조건으로 철학해야 한다.”고. 예술이야말로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쓸 때 기본 명제로 삼을 만하다.

거듭나는 한 해를 위해! 나도 이 명제를 가슴에 품어 봐야겠다.

나는 은평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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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표를 가져간 은평갑의 박주민 의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된 9일 오후… 국회의사당에서 참관을 온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다시 봐도) 유가족이 된 듯 콧날이 찡해진다.
이 아름다운 청년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한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조금 더 오래 살아, 그런 모습을, 그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이 땅에서.
(한데 이 사람 정말 동안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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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여전히 조마조마하다. 앞으로도 꽤 오래 그럴 것이다.
이 땅의 격동기를 살면서 누적된 적지 않은 경험이 낙관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
그 쉽지 않은 낙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윤종신 – 배웅 with Pianist 김광민

[vc_row][vc_column width=”1/1″][vc_video link=”https://youtu.be/HR_NEwTxxQ8″][/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 width=”1/1″][vc_column_text]광장의 촛불과 함성이 끌어낸 유의미한 첫 결과를 보며 한 숨 돌리고 나서.

팬텀싱어, 라든가.
멋진 청년들이 나와 근사한 노래들을 뽑아내는 티비프로에서 성악하는 이들의 편곡으로 들은 후 여운이 남아 찾아 듣고 있다.
더욱 부드러워진 음색과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흐르는 노랫말은… 이 사람의 노랫말은 정말 잘 들려… 너무 찌질해서 진짜 같고, 아마도 진짜일 것이고, 이제는 그립기도 한 그 찌질함을 아름다운 노래에 담아놓으니, 울컥해지면서도 위로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암튼.. 하마트면 버스 차창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한 걸 용케 참았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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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국에서 JTBC ‘뉴스룸’이 보여주는 탁월함의 하나는 저들의 언어에 대한 섬세한 진단일 것이다.
앵커브리핑은 말할 것 없고, 팩트 체크나 비하인드 뉴스에서 발휘되는 명쾌한 진단은 확실히 다른 뉴스와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준다.어제의 앵커브리핑에 나온, 진퇴와 퇴진, 고백과 자백, 주장의 차이를 언급한 다음과 같은 발언도 그 예.

“대통령은 ‘진퇴’라는 단어를 말했다. ‘진퇴’와 ‘퇴진’이라는 단어 사이에도 비슷해 보이지만 커다란 간극이 있다”
“‘퇴진’은 구성원 전체나 그 책임자가 물러난다는 것이지만 ‘진퇴’는 직위에서 머물러 있음과 물러남을 모두 뜻한다. 즉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

“자신은 ‘주변을 관리 못한 것 외에는 잘못이 없다’는 고백도 자백도 아닌 주장”
“역사는 뜨거운 거울로 기록할 이 거리에서 우리는 그 역사에 무엇을 고백할 것인가”

하나 그보다 놀라운 건 저들의 언어이다.
두루뭉실한 “꼼수”를 감춘 음흉한 말들, 민중은 개, 돼지라거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망언들 뿐 아니라…  듣자 마자 소름이 끼치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비선조직 관련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라는, “응징을 체감시켜 반성하게 해야한다.”라는 문장

권력을 휘둘러 폭력적으로 응징을 하는 것도 모자라… 신체에 각인된 겸험으로 내재화시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주체로 만들겠다는 저 흉포하고 사악하고 끝내 뻔뻔한 권력이라니.

탄핵안 내일 처리 무산 속보가 날아오고,  촛불 집회의 피로도 계속 쌓여가고(콜록 콜록)… 누구 말대로 최소한 “근대시민”으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구나, 오늘 여기의 삶은.

속초, 봉포항

일년여 만의 바다였다.
가능하면 멀리, 좀 더 크고 긴 걸음 하고 싶었으나 고작 일박 이일의 속초다.
게다가 계속 전화와 카톡으로 연락을 해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기어이 아침 일찍 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쨍한 가을 하늘 아래 시원한 풍광과 상쾌한 공기에 절로 호흡이 깊어지고 근래 다시 시작된 두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새로 개통되었다는 미시령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겨우 2시간 10분인데
이리 몸은 둔해지고 나의 생은… 총체적으로 낡고 쇠해가고 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흡입한 바람의 약발도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빠작거렸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낯섬”이 거의 사라진 시공간도 문제였을 테지만, 내 폐의 흡입력, 무디어진 감각세포도 큰 원인일 것이다.
이제는, 다른 여행을 모색해야할 때인가 싶기도 하였다.

돌아와 뱅쇼님의 블로그에서 “네덜란드 조력자살 허용 검토” 소식을 보았다.
거기에도 언급된 스위스행은 작년 여름, 영국 할머니의 뉴스를 접하면서부터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터였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아”, 자녀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게 싫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간호사 출신의 75세 질 패러우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마지막 여행의 경비는 벌어놔야 해’ 라는 중요한 명분과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유독 노동의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난 한 해 동안, 팍팍한 노동을 견디게 해주는 일종의 노동가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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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7&art_id=201508101711251

다시 찾아 본 할머니의 사진 속 미소가 편안하게 아름답다.
나의 마지막 여행도 그랬으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실로 오랫만의 블러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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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간만의 숙취로 종일 티비 드라마 보며 뒹굴뒹글 찌그러져 있었고,
지금은 “비 오는 저녁의 홀로 사무실”이다.
주말에 일하는 언니를 위로한다며 HJ가 간식거리를 잔뜩 싸들고 와 커피와 함께 한 판 수다를 떨다 갔다.
자신의 표현대로 너무 늦게 “성장통”을 통과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도 마음을 모아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예쁜 아이의 응원도 도착했다.
나를 칼국수 누나라 부른다는 아이가 보내는 하트에, 굳은 얼굴로 툴툴거리며 일하던 내 얼굴이 말랑해지고.
아이가 보내준 응원으로 충전된 즐거운 기운을, 나도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진다.
무덥고 힘들었던 시간을 우리 모두 의연히 잘 견디어 통과해 왔으므로.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 역시 그리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기에.

선유도, 2016′ 봄

[vc_row][vc_column width=”1/1″][vc_gallery type=”nivo” interval=”3″ images=”5910,5908,5909,5919″ onclick=”link_image” custom_links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vc_column_text]주말의 드라마 재방.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괜찮지 않죠?….   괜찮을 거예요. 초기니까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남자가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며, 그러나 서둘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거라고,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한다.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한 그와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본 적 있는 맑은 얼굴의 그의 아내도 그의 옆에서 저리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의 고통을 다독이며, 의연하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겠지.
이런 게 “옆에 있다”는 것의 그 묵직한 무게일 수 있겠다는 생각.
어두운 고통의 상황이든, 일상의 크고 작은 생채기를 달래는 상황이든.

밝은 에너지를 가진 H한테 끌려나가 한껏 봄바람을 맞고 왔다.
봄바람 살랑이는 선유도는 기억 속의 그것과 너무 달라 어쩐지 좀 낯설기도 하였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말의 불가능, 기억의 불가능

살아남은 자는 언어의 문제에 무기력하다. 그는 사건과 증언 사이의 분열, 기억과 언어 사이의 배반을 감당해야 한다. 기억하는 자는 말의 불가능이라는 막막한 경험과 마주하며, 말하는 자에게 문제는 기억의 불가능이라는 사태이다. 기억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둘러싼 완료된 시간이며, 언어는 항상 어긋나고 뒤늦게 찾아온다. 살아남은 자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발화의 고통과 침묵의 무게 사이에서 진행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서 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발화가 고통스러운 것은 지상의 언어로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고통의 실재적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시작되고, 그 언어가 실재를 붙잡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다. 이 세계의 언어들은 이미 충분히 상투적이고 부정확하며 말할 수 없는 자의 침묵을 끝내지 못한다…

이광호, <남은자의 슬픔> (팽목항에서 부는 사람, 현실문학) 81쪽

201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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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여름 강가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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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한 해가 내게 왔고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또 한 해를 살아내게 될 것이다.
2016년을-베르그손식으로 말하자면 –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질적변화의 연속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반복하면서 현재를 새롭게 하기 위해 어떤 리듬과 속도로, 어떤 기억의 강도로 한 해의 시간들을 구성할 것인지…
잠이 잘 안온다.

아마도 마지막일 신샘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왔다.
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감사하다 말을 할까,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었지만
막상 얼굴을 뵈었을 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잠깐 눈을 뜨신 틈을 타 그저 아주 간신히 창백한 선생님의 한 손을 잡아보고 나올 수 있었다.
가늠하기 힘든 고통과 대면하는 와중에, 기력이 없다며 미안해하시는 표정은 어찌 그리 맑고 순하고 온화할 수 있는 것인지.

 

어쩌다 MBTI 검사라는 걸 해봤는데 실망스럽게도 … 예상 그대로 빼도박도 못하는 (누군가의 말로는 놀랍게 전형적인) INFP 몽상가 타입이다.
INTP만 되어도 좋으련만..
어쩌랴 타고난 기질이라는데. ㅠㅠ
그래도 대한민국의 3%라니, 그리 나쁜 건 아닐 거라고 우겨본다.
 

찾아야할 사진이 있어 오래된 하드 디스크들을 뒤지는데, IDE 방식의 하드들을 위해선 전환 케이블을 구입해야 했다.
어떤 데이타들, 기억들은 조만간 이런 식으로의 접속, 전환, 호출도 어려워지겠지.
그리 되기 전에 백업을 해놓아야 할 텐데, 몸은 왜 이리 무겁고 둔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