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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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화사한 햇살아래 생기발랄한 젊음으로 흐드러진 거리가 몹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요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을 카피하다>를 보았다.
<기막힌 복제품>이라는 책의 강연장에서 저자와 독자로 만난 두 사람이 재회를 하고, 그로부터 시작된 원본과 복제, 원작보다 가치 있는 위작에 관한 흥미로운 논쟁은 현실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다. 부부행세를 하는 것으로 어떤 현실을 모방-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묵시적 동의하에 일종의 역할극처럼 진행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가 역할에 몰입이 되어 현실의 갈등과 번뇌를 그대로 담아내면서 진지함의 무게를 더해가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마침내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시계종이 울릴 때까지.
“원작 또한 현실의 모방”이라는 제임스의 언급, 작품의 가치와 위계, 감동과 해석의 문제 등 예술에 관해 쏟아지는 발언들은 매우 흥미롭고, 가짜 부부행세가 현실의 무게를 드러내며 감동을 전할 때에는 현실의 모방을 통해 예술에 이르려는 영화 자신을 위한 영화로도 읽힌다.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박물관과 교회, 시골지역의 풍경도 시선을 사로잡지만 무엇보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 <블루>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그야말로 로마의 조각같은 서늘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던 그녀는 이제 아줌마가 되었다. 그녀의 눈가와 입가에 주름을 만들고 매끈하던 얼굴과 몸에 중력의 흔적을 만들어낸 시간과 현실의 질곡은 내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블루>의 그녀와 이 영화 속 그녀(영화 속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의 간극은 ‘아름다운 가상’과 현실의 리얼리티 만큼이나 커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속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혹은 제임스의 말대로 예전보다 더 아름답다. 우리의 비루한 현실과 견준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가상이므로.
현실을 닮은, 혹은 담은 영화는 이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이다.
복제-박물관의 위작 모나리자-가 원본보다 아름답고 감동을 줄 수 있듯이.

향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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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에서 프로이트는 어머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랑은 향수병이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나는 정말 그 말에 공감한다. 내게도 역시 사랑은 향수병이다.

                                  – 할 포스터,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서문 중에서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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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피곤했던 지라 열시부터 잠자리에 누웠는데 한 시간 반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남은 와인도 홀짝이면서 가장 하기 싫어 미적거리던 일에 손을 댔음에도, 일단락을 짓고도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어 다시 뜯어 고칠 때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연신 빠작빠작거리는 머릿속이 문제일 것이다. 머리통을 어찌 잠재울 수 있는지, 어찌 플러그를 뽑아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도 이럴 때가 있는지, 이럴 땐 어찌하는지, 궁금하다.  
우유를 데워 마시고 달아난 잠을 다시 불러봐야겠다.

녹색성장 Art Festival 아름다운 물길전이라…

“2011 녹색성장 Art Festival 아름다운 물길전”이라….
반이정씨가 “경악 뜨악 최악의 미술전”이라 표현하는, 이런 뻔하디 뻔한 행사에 63인이라니 많긴 하다..
이거이 Art Festival 이라면, 예술, 욕 먹는 게 당연하겠다. 이렇게.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데 참가할까 잠깐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궁금증 오래가진 않았다.
요즈음 종종 드는 생각은 이런 거다.
사람들이 좀 덜 솔직하고 덜 노골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거.
천박하고 경박하고 탐욕스럽고 비겁하고 비열하고 멍청한 면들을 드러내는 데에 그리 당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적당히 아닌 듯 좀 감추고, 좋은 사람인 척도 하고(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
우리 사는 거 대충 그렇더라도 그게 그리 뻔뻔하고 당당할 일은 아니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어야하지 않겠나. 그러다보면 멋지고 좋은 사람이고픈 욕심도 생기고 할 터인데, 그런 욕심을 훌훌 벗어던지고 솔직함의 미덕(!)을 마구 발산하는 이들과 맞딱뜨리고 나면 맥이 탁 풀리고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참 재미없다.
* 주말까지 끝내기로 했던 일을 성공적으로(내 보기엔 심히 아름답다는 흐) 끝내고 나서 어제 편의점에서사다 쟁여놓은 달콤한 로제 와인을 한 잔 마신다. 좋다. 코딩하기가 너무 귀찮아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더랬는데, 끝내고 나니 이제 이 새로운 웹표준 방식의 장점을 알 것도 같다. 당위로 과제로 주어질 때는 뭐든 좀 성가지고 귀찮게 마련이지. 익숙해져 편해질 때까진.
그래도 참 빨리 변한다. 트렌드는 말할 것도 없고, 시스템, 툴이, 문법이 마구 변하니 참 맘에 안든다. 플래시만 해도 어플리케이션 자체가 너무 빨리 계속 버전 업이 되는데, 작업환경이 팍팍 바뀌는 것도 맘에 안들지만, 두어 차례 버전을 건너 뛰면 이전 포맷을 지원을 안하니 이전 소스를 써먹기도 쉽지 않다.
그 변화를 계속 따라가줘야 한다. 이전 소스는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해야한다. 그런데 그거, 내가 정말 못하는 거잖아. 변하는 거, 버리는 거. 흑.

인생역전과 재기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⑤ 로또 를 재밌게 읽었다.

특히 매주 십만원어치씩 20주 동안 복권을 사면서 현대 과학과 포천쿠키를 대결시킨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실험정신은 호 대단타.
생각해보니 이번 주에 복권을 하나 사봐야지 했는데 잊어버렸다.
다행히!도 집근처에 복권 파는 데가 없어, 사려고 맘 먹었다가도 늘 잊어먹는다.
유난히 추었던 지난 겨울엔 안잊어먹고 두어 번 복권을 샀다.
좋은 꿈을 꾸었던 한 번은 숫자6개가 모두 나왔는데 아쉽게도 두 줄에 걸쳐서 나왔다. 그리하여 당청금 만원!
남들이 별 거 아니라 했지만,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행운의 여신의 미소와 접촉해있던 공기 입자 중 하나 정도가 내게로 흘러와 닿은 느낌이랄까. ^^
칼럼의 마지막 문장, “그들이 제 월급으로 편한 집에서 안락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은 로또보다 낮기에, 그들은 가장 높은 확률인 로또에 매주 1만원을 걸고 있는 걸 게다.”는 역시 씁쓸한 결론.
안락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이 “814만5060분의 1″보다 낮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다. 우리가.  
그러니 뭐 우리가 안락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들 그리 슬퍼하거나 분노할 일은 아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필요가 없는 건 삶이 원래 속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속임을 당했다 하여 분노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인 걸 인정하고 속지 않으면 된다는, 대략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면 지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피씨 통신 시절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 토요일에, Gerry Mulligan과 Chet Baker의 1974년 카네기홀 실황 앨범을 듣는다.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으로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쳇 베이커에겐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재기의 무대였단다. 옛 동료 제리 멀리건과의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88년 유럽 투어중 마약 복용후에 끝내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으니, “재기”라는 면에선 실패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으나… 재기니 성공이니 마약, 파멸 같은 단어들만으로 이 뛰어난 재즈 뮤지션의 인생을 형용할 수 있을까.
그가 마약에 찌든 육체로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고 슬퍼하고 분노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뮤지션으로서 그의 정신은 추구하는 음악의 정수를 향하여 뚜벅 뚜벅 나아가고 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쨌거나 어려운 인생이다. 인생역전도, 과거의 영광으로의 재기도.
그냥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일조차.

Somewhere over the rainbow, sarah Vaughan/ Eva Cassidy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노랫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무지개 너머를 꿈꾸는 앳된 소녀 같은 Sarah Vaughan. 댓글을 흩어보니 34살이었단다. 정말일까.
암스트롱인가가(기억이 가물) 이 노래를 제일 잘 부른다고 격찬했다는 Eva Cassidy(아래)가 33살에 암으로 죽었으니 위 영상 속의 Sarah Vaughan보다 더 젊었을 텐데, 많이 아팠던 걸까,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
맘이 짠하다. 엘피판 자켓 속의 앳된 모습만 봤던 지라 좀 낯설기도 하다.
김광석도, 소설가 김소진도, 예수도, 부처도, 또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정말 마감!)한 나이 서른 셋.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았다면…. -,.-;;
 
같은 노래, 다른 삶, 다른 음색. 노래란 참…
노래야말로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의 인생과 가장 가까운, 가장 닮아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
전파사에서 헤드폰 앰프에 달린 어댑터를 고쳐가지고 왔다. 선물받았을 때 워낙 한 귀퉁이가 깨어져있던 거라 테이프로 칭칭 감고 썼었는데, 카메라 가방을 위에 턱 올려놓는 바람에 한쪽이 산산조각이 났다. 나름 영국에서 물 건너온 거라 어찌해야하나 물었더니, 전파사 아저씨가 금속으로된 코를 떼어내고 전선을 맞바로 220V용 플러그로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끝 (오천원!). 집으로 돌아와 다시 테이프로 칭칭. 보기엔 안쓰럽지만 연결하니 훨 편해졌다. 역시 가난한 자취생에게는 헤드폰이 진리.
음악이 좋으니 일에 집중이 안된다. 할 일이 쌓였는데. -,.-  

재즈를 지르다.

기어이 질렀다.

오래 기다리던 수금완료와 가정의 달을 기념하여(왜 기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념쿠폰이 명하는대로) 질러주신 건, <THE PERFECT JAZZ COLLECTION >이다.

레이블을 대표하는 25장의 명반이 연대기 순으로 각각 수록되어 있는데, 전세계적으로 절판되어 소장하기 어려웠던 걸작들을 모두 포함한단다. 유니버셜과 블루노트 등에서 나온 다른 박스셋들과 비교해, 원본 LP를 충실히 재현한 오리지널 커버아트에 점수를 주어 선택되었다. 과연 LP쟈켓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난다.
장당 3천원도 안되는 가격을 생각해보면, 정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축복으로 느껴질 정도.  

재즈를 자주 듣기 시작한 작년에도 한참 고민하다가 말았는데, 라군이 뽐뿌를 주는 바람에 마음이 혹했다. 이런 걸 갖춰 놓으면 한동안 재즈음반에 대한 뽐뿌가 안 생긴다는 게 근거.  
상태도 음질도 좋아보인다.
한동안 집에서 죽치고 일하는 것이 무료하지 않겠다.

별이 되어 떠난 벗을 기리며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날은 일어나자마자 밥을 꼭 먹는다. 국도 끓여 밥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커피도 많이 마신다. 그러면서 화장실을 두어 번 들락거리다 보면, 두통약을 먹지 않아도 두통도 수그러지고 숙취에 속하는 모든 증상이 쉬이 가신다. 진정한 술꾼의 포스를 풍기는 P선생에게서 배운 방법인데, 역시 어떤 분야이든 고수들의 지혜는 경청할 만하다.  
대략 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달고 다니고 대학 시절에 피크였던 편두통은 이제 정말 많이 가셨다. 늘상 상비약으로 준비해놓았던 두통약, 소화제도 리필을 해 본지가 좀 되었다. 해야할 일이 있어 마음이 조급해질 땐 약통에 손을 대려 하다가도 “에이, 젊은 사람이 왜 약을 먹어” 하던 약사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 서랍을 닫아버리곤 한다. 이도 바람직한 현상이라 여긴다.

간밤에 와우공원에서 가맥(street beer)을 나누었던 H선생님은 이전에 언뜻 뵈었을 때와 전혀 달라보였다. 이젠엔 카리스마 짱짱한 왕언니 같았는데, 어젠 슬픔에 빠진 단발머리 소녀였다. 얼마 전에 읽었던 김형경 <꽃 피는 고래>의 열 일곱살 니은이가 생각났다. 주먹을 쥔 손으로 가슴을 치며 꺼이 꺼이 우시는데, 그 안에 담긴, 크게 요동치는 슬픔이 개미의 페로몬처럼 와우산의 밤공기를 매질로 전해져 왔다. 떠나신 분에 대해서도, 그 분의 슬픔의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슬픔은 어떤 방식으로든 애도되어 떠나보내는 것이 필요하고, 그럴 때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N씨 같은 존재는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게도 그런 고마운 이들은.. 과거에도 몇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내가 가고 난 뒤에 그렇게 슬퍼해줄 사람들이 있을까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몇 해전 이 노래를 들으며 맥주 한 잔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가고 나면 이렇게 “별이 되어 떠난 친구”라고 말하며 슬퍼해줄거냐’ 묻고는 다짐을 받았었는데, 그가 그 사실을 기억하고는 있을지 모르겠다. 담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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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추모집 <가객>에 실렸던, “별이 되어 떠난 벗을 그리며”(백창우 곡, 권진원 송숙환 노래)다.

* 위탄에서 태곤이가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렀다. 잘 한다. 다가올 사랑을 생각하며 불렀단다. 이쁜 것. 볼 수록 귀엽다.

승부

“나는 가수다”를 나도 봤다. 임재범 나온다고 오~ 하며 티비에 다가 앉았는데, 좀 많이 아쉬웠다.

프로그램 자체가 경쟁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잠깐 잠깐의 인터뷰에 비친 그는 승부에 집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1등을 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목소리엔 너무 힘이 들어가서 부드러운 연결없이 뚝뚝 끊어지며 듣기에 불편했고 이전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내겐 내내 아쉬운 채로 노래가 끝이 났다. (그리고 1등을 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워낙에 내가 좋아하던 김연우의 편안하게 젖어드는 감성적인 목소리가 더욱 빛이 났다, 고 느껴졌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 성향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승부욕. 이게 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데, 뭔가를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임을 모르지 않는데, 또한 “난 지는 게 좋아, 이기면 미안하잖아” 하는 식의 멘트는 성공한 감독(이준익)이 말할 때나 멋있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아는데,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가까이하는게 내게는 참 어렵다.  그걸 내 것으로 한다는 것도 물론이다.
* 오늘 찌질한 싸움에서 진 이야기를 썼다가 지운다.
주저리 주저리 시시콜콜한 얘기를 쓰잘데 없이 늘어놨다가 무심코라도 이런 걸 읽게 되는 이들에게 미안해져서.
요즘 이런 일이 잦구나.
(흑, 이럴 땐 부지런한 RSS 리더가 원망스럽다는.)

공휴일의 낮술

어제는 정신없는 하루였다. 뭔가를 하다 심히 늦은 시간에 잠이 드는 바람에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한 10시에 전화를 받고 잠이 깼다. 약속 장소가 집앞인데다 세수 같은 걸 초고속으로 마칠 수 있는 단련된 능력과 뒤집어쓰고 나올 모자가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방에 들어온 것이 밤 10시. 배가 고파 냉장고를 뒤져 뭔가를 뱃속에 채워넣고 보내야할 문서를 마무리해 보내고 나니 자정이 넘고, 잡다한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세 시쯤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몸이 천근 만근 무거워 알림 소리를 오래 오래  듣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휴 아무래도 다시 운동 같은 걸 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때우고 전화며 문자, 메일을 확인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좀 더 기다리다가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넣어보는데 역시 깜깜.

다른 사안으로 또 다른데에 문자를 보냈는데도 깜깜이다. 발송되었다는 알라딘택배도 안오고.



그런데, 아 오늘이 공휴일이었다는. 이 하루살이 프리랜서는 벌써 한참전에 요일감각을 상실하더니 공휴일마저 감지가 어렵게 되었더라는.      

그래서 어제 어떤 사람들이 술이 땡기는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이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열고 카프리의 뚜껑을 따고 있다.

흐, 시원해.

낼 모레 보내야할 디자인시안과 또 다른 미션 하나는 잠시 잊기로 한다.

카프리 한 병이 내 목을 타고 흐르는 동안은. 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