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2016′ 봄

[vc_row][vc_column width=”1/1″][vc_gallery type=”nivo” interval=”3″ images=”5910,5908,5909,5919″ onclick=”link_image” custom_links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vc_column_text]주말의 드라마 재방.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괜찮지 않죠?….   괜찮을 거예요. 초기니까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남자가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며, 그러나 서둘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거라고,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한다.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한 그와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본 적 있는 맑은 얼굴의 그의 아내도 그의 옆에서 저리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의 고통을 다독이며, 의연하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겠지.
이런 게 “옆에 있다”는 것의 그 묵직한 무게일 수 있겠다는 생각.
어두운 고통의 상황이든, 일상의 크고 작은 생채기를 달래는 상황이든.

밝은 에너지를 가진 H한테 끌려나가 한껏 봄바람을 맞고 왔다.
봄바람 살랑이는 선유도는 기억 속의 그것과 너무 달라 어쩐지 좀 낯설기도 하였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말의 불가능, 기억의 불가능

살아남은 자는 언어의 문제에 무기력하다. 그는 사건과 증언 사이의 분열, 기억과 언어 사이의 배반을 감당해야 한다. 기억하는 자는 말의 불가능이라는 막막한 경험과 마주하며, 말하는 자에게 문제는 기억의 불가능이라는 사태이다. 기억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둘러싼 완료된 시간이며, 언어는 항상 어긋나고 뒤늦게 찾아온다. 살아남은 자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발화의 고통과 침묵의 무게 사이에서 진행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서 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발화가 고통스러운 것은 지상의 언어로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고통의 실재적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시작되고, 그 언어가 실재를 붙잡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다. 이 세계의 언어들은 이미 충분히 상투적이고 부정확하며 말할 수 없는 자의 침묵을 끝내지 못한다…

이광호, <남은자의 슬픔> (팽목항에서 부는 사람, 현실문학) 81쪽

201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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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여름 강가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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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한 해가 내게 왔고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또 한 해를 살아내게 될 것이다.
2016년을-베르그손식으로 말하자면 –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질적변화의 연속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반복하면서 현재를 새롭게 하기 위해 어떤 리듬과 속도로, 어떤 기억의 강도로 한 해의 시간들을 구성할 것인지…
잠이 잘 안온다.

아마도 마지막일 신샘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왔다.
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감사하다 말을 할까,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었지만
막상 얼굴을 뵈었을 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잠깐 눈을 뜨신 틈을 타 그저 아주 간신히 창백한 선생님의 한 손을 잡아보고 나올 수 있었다.
가늠하기 힘든 고통과 대면하는 와중에, 기력이 없다며 미안해하시는 표정은 어찌 그리 맑고 순하고 온화할 수 있는 것인지.

 

어쩌다 MBTI 검사라는 걸 해봤는데 실망스럽게도 … 예상 그대로 빼도박도 못하는 (누군가의 말로는 놀랍게 전형적인) INFP 몽상가 타입이다.
INTP만 되어도 좋으련만..
어쩌랴 타고난 기질이라는데. ㅠㅠ
그래도 대한민국의 3%라니, 그리 나쁜 건 아닐 거라고 우겨본다.
 

찾아야할 사진이 있어 오래된 하드 디스크들을 뒤지는데, IDE 방식의 하드들을 위해선 전환 케이블을 구입해야 했다.
어떤 데이타들, 기억들은 조만간 이런 식으로의 접속, 전환, 호출도 어려워지겠지.
그리 되기 전에 백업을 해놓아야 할 텐데, 몸은 왜 이리 무겁고 둔한 지…

이런 달력, 이런 집 따위… 없는 세상을 위해…

오늘 아버지의 기일을 앞두고 철원에 있는 공원묘지에 다녀왔다.
오래전 어머니가 가신 날엔 오늘처럼 비가, 아버지가 가신 날엔 차가운 눈발이 뿌옇게 날렸더랬는데
오늘 날씨도 종일 그렇게 추적추적 비가 흩뿌렸으므로 갖은 상념속에 마음은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근래에 장례식만 두 번이나 다녀 온 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원 묘지 입구에서 보았던 “우리 가족의 마지막 집” 이란 광고문구는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이화님의 블로그 “들녘葉書“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을 흐믓하게 받아보신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 달력의 초창기엔 나도 몇 개씩 구매해서 비싼 배송비를 물면서 해외에까지 보내고 그랬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한 중에 그냥 지나쳤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러한 이미지들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달력 이미지로 소비되는 는 것이 마음이 꽤 불편하다는 것도 있었는데…
주문기한이 지난 걸 알게 된 그 날엔 꿈을 꾸었다.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걸로 어쩔 줄 몰라하는. 참 알량하게도.
그래도.. 이리 꾸준히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아래 링크는 그 달력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노순택 사진가가 보내온 것이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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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을 고민하고 쓴 글이라고, 꼭 읽어달라고 보내온 글은 꽤 길고, 위의 사진처럼 춥고 무겁다.
아, 정말이지 저런 최소한의 달력, “이런 집 따위”  “필요없는 세상”이 오기를…

꽤 긴 글의 말미에는,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짓기 위한 제안이 있다.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깨끗히 씻을 수 있고 포근하게 잠을 자기 위한 쉼터로 이용될 집이고, 이런 집 따위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한 집이란다.

* 노순택 작가의 갤러리 사이트를 엊그제 오픈했다.  suntag.net
이전 티스토리 블로그의 데이타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고생은 마니 하였지만 그리 많은 손상없이 잘! 오픈해놓고 나니 흐믓하다.
(막상 그 주인은 이 엄혹한 시대를 치열하게 사느라, 이러한 일들로 너무 바빠, 신경도 못 쓰고 있으나… ㅠㅠ )

들녘을 걷고 싶을 때 언제든 오라시는 이화님의 말씀이 눈물겨웠던 이후로 호시탐탐 길을 나설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눈앞의 상황이 그리 호락하지는 않다.
아마… 어떤 면에서는… 내 개인적으로도 꽤나  추운 겨울이 될 거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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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네버엔딩스토리 중)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부른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리메이크 뮤직비디오가 공개돼 화제를 낳고 있다….”

보온병에 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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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사은품 이벤트에 쉽게 낚이는 건, 알라딘이 사은품을 잘 만들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이번 보온병 역시.. 감기로 오래 고생중인 나를 위해 마련된 선물인 듯하니, ㅗ너무 쉽게 말려들고 말았다.
(이벤트 대상 상품을 꼭 포함시켜야 주는 조건은 없었으면 좋으련만. 목표 금액을 채우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 그것 땜에 쇼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
그리하여 오늘 당도한 책들.

<밥벌이기의 지겨움>의 라면 버전인가  싶었던 김훈의 산문은, 꼭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작가의 말)으로 추려서가 아니더라도  이젠 그 문장들이 꽤 친숙해져 편안하게 읽혀질 것 같다.

두 권의 책에 “우울”이 들어가 있다. 근대 들어 자꾸만 부딪히게 되는 단어다.
이유야 어떻든, 계기가 무엇이든, 한번 쯤 숙고해봐야할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파리의 우울은 책이 자그많고 가볍고 예쁘다.
몇 달 전, 서동진의 <변증법의 낮잠-적대와 정치>를 받아들었을 땐 자그마한 활자에 대해 노안이 어쩌구 하면서 투덜댔었는데, 막상 집을 나설 때 가방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미덕에 비해서는 작은 활자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런 책이 반갑다. 몇 정거장 되지 않은 전철을 오가며 읽기엔 더없이 좋을 것이다.

배수아의 에세이는 처음이다.
소설로 만났던 그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여행기라는 형식에서 어떻게 발현될 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여행기를 읽고서 여행의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추천글에 끌렸다.
따라해볼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충동질을 하지 않는, 참으로 안전한 여행기인 셈이다.

찬란한 시간

계좌를 만들러 은행에 갔다가 110세 보장 금융상품 광고가 크게 걸린 플랭카드를 보았다.
110세를 (110세까지 사는 걸) 보장해준다는 말처럼 들리네… 하는 생각을 하며, “110세 보장 상품이 있네요…” 했더니
남양 아쿠르트를 쥐어주던 직원이 말한다.
“그러게요. 얼마 전까지만해도 100세였는데 말이죠.”
오랫만에 맛보는 야쿠르트의 달콤함에, 오래 가는 감기로 무뎌졌던 감각이 살아남을 느끼며, 늘어난 수명이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L선배의 갑작스런 죽음이 예상보다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문득 문득, 새록 새록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들이, 전철을 기다리다, 걸음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끼어든다. 심적으로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알고 지낸 시간들이 길었고, 무엇보다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그가 보여 주었던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해보지만, 갚을 기회를 주지 아니한 어떤 일은 내 남은 생 내내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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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우려와 절박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 치유를 찾았던,
그리하여 너무 서둘러 생을 마감했던 그가 선택했던, 보여주고 싶었던 마지막 모습이 이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는 이렇게, “앓는 시간도 찬란한 시간”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며 의연하게 (110세 보장 상품이 나오는 시대에는 너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종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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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 슈퍼문이 예고되고 있던 즈음에, 종이달을 보았다.
그리고 근래 들어 더 자주, 생생하게 듣게 되는 행복하지 않음, 우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선배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오늘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표현인양, 때로 푸념을 넘어, 한탄을 넘어 신음처럼 들려오는.

은행에 들어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친구도 생각났다.
그곳이 은행이 아니었더라면 친구의 오늘은 조금 달랐을까? 조금 덜 우울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지금은 종이달이 슈퍼문이 되어 우리네 삶의 소망을 모두 삼켜버린 시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

맺힌다는 것

“자, 여기 술잔을 잡아봅니다.

여기에 왜 맺히는 지 압니까? 이것은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술을 마십니다.

규호는 피존의 말을 마치고 남은 생맥주를 모두 마셨다. ”

(김중혁, 가짜팔로 하는 포옹 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