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라는 스타일

노라 존스는 재즈가수인가, 라는 논란이 꽤 크게 있었던 모양이다. 재즈가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크게 성공한 그녀의 노래는 전혀 재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팻 매시니의 음악은 재즈적인 것인가. 탐 웨이츠는? 이런 논란 속에서 재즈는 사실상 스타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고, 이는 사진계에서 들리는 다큐멘타리에 대한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큐멘터리(형식이라 해야할 지 분야나 장르라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큐멘터리적 스타일로만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전혀 이질적인 두 동네에서 보이는 논란이 참 닮아 있는 것이 흥미롭다 생각하고 나니, 그 밖에도 전체적인 이미지랄 지, 역사적 형성 과정이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행해왔던 역할 혹은 실천 같은 것들에도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P선생이 추천해준 에릭 홉스봄의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를 주문했다. 알라딘 중고코너에도 올라와 있었는데, 새 책과 가격이 같다. 알라딘 중고를 꽤 짭짤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유용한 책을 헐값에 사기도 하고 얼마 전 상태 좋은 책들을 되팔아서 십만원이 넘는 적립금을 받았다. ㅋ) 절판된 책이나 음반들이 두 배나 넘는 가격으로 올라오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예전에 폐기처분된 LP판들과 책들이 아쉬울 때도 있다.  

토요일이라 다음 주에나 올 책이 궁금하여 책 내용을 찾아봤더니 정작 재즈에 관한 언급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원제는 <Uncommon people>이란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영국 노동운동에서 시작하여 아방가르드 예술과 사회주의와의, 농민운동, 베트남전을 관통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재즈란 것과 연결되는 그 사유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 같다.  

music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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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으면서 틀어놓은 티비에서 <어거스트 러쉬>를 보았다.
울 조카들도 재미있게 보았던, 음악의 마법과도 같은 힘을 믿는 천재 소년에 관한 영화이자, 음악 그 자체에 관한,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

You know what muisic is? God’s little reminder that there’s something else besides us in this universe, a harmonic connection between all lining beings, enery where, even the stars.


I believe in music the way that some people believe in fairy tales.


The music is all around of us. All you have to do is listen.

다시 보는 영화의 대사들이 내게는 좀 특별했던 영화 <콘텍트>와, 그 날의 친구를 떠올리게도 한다.

인라인을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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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창문. 이곳에 깃드는 싱싱한 아침을 보려하는데… 잠이 안온다.)  

그제, 드디어 삼사년만에 인라인을 둘러매고 한강 공원엘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랫만에 굴려본 인라인 바퀴는 기분좋은 바람과 스피드를 선사했고, 옆으로 지나가는 해지는 풍경은 맑은 날씨 탓에 지독하게 예뻐서 시선이 자꾸만 옆으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끌고 나온 지역주민 두 분은 자전거를 타고 쌩~ 지나가며 힘들지 않냐, 그런 힘든 노가다를 왜 하냐, 라는 말을 던지기도 하였지만, 나의 인라인 실력이 엉터리는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언해주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강습을 받은 것처럼 폼이 제대로다, 라는 말까지 던져 줌으로써, 오래전 초등학생이었던 조카한테 받은 수모를 기분좋게 떠올리게 해주었다. 정말로 제대로 정식 강습을 몇 달 받았던 조카는 자신있게 내게 시합을 제안했다가 속도에서 지가 훨씬 뒤쳐지자, “이모, 인라인은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폼이 중요한 거야” 라고 큰 소리로 주장을 했던 것이다.  
   
오늘도 잠이 안와 (다시 잠이 안오기 시작했다. -,.-) 쌓아두기만 하던 사진도 흩어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옛날 홈피 백업해둔 게 멀쩡히 있는가 슬쩍 방문해보니, 신이 나서 인라인을  타던 얘기가 읽히고, 여기에 내가 인라인을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실마리가 발견된다. (누구는 예전에 쓴 거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했는데, 나는 그보단 재미가 있다고 느낀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거의가 새로운 데다 아무리 생각해도 늘 현재보다 철이 조금은 더 들었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기억하기에 이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던 듯. 점차 퇴행을 한다고 느끼는… 뭘까, 이런 태도는.)    
 
인라인을 둘러메고 호수공원에 다녀왔다.
호수공원은 상암에 비해 인라인 타기가 훨 수월하다. 산책로와 나란히 자전거도로가 곧게 나있고, 불빛 어른거리는 호수를 끼고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이곳의 작은 동호회의 사람들로부터 한 수 배우는 보람이 있었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좌우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방법.
그래야 속력을 낼 수 있단다.
무게 중심을 낮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했다.
방법도 모르고 뒤뚱거리며 타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잘 타는 건 무게중심이 워낙 낮아서 그렇다고 하니,
굳이 낮추지 않아도 무게 중심이 남보다 한참 낮은 내가,
심한 몸치로 산 세월에 비해 큰 어려움없이 인라인을 타게 된 비밀이 풀리는 듯 하다.
어쨌거나 무게중심을 낮추며 타는 연습을 좀 더 하면, 나도 속력을 좀 낼 수 있겠다.
그리고 삶의 체질도 바꿀 수 있을지도.
무게 중심. 속도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
메신저 대화명을 무게중심으로 바꿔야겠다. 
(2006/03/24)

좋은 사람

아이들의 그림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훌륭한 사람” 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 없이도 그들이 내게 보여주는 따뜻한 시선과 신뢰와 응원은 언제나 헝클어지고 망가진 나를 정돈하고 추스리는 힘이 되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존감의 복구가 필요하다 외치던 시간에 이어 다시 그 욕망이 꿈틀거렸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라인더를 주문하다.

커피값이 많이 들고, 점차 맛있는 커피를 탐하게 된다는 이유로 (집에선) 커피를 안마신 지 두어주 지난 후에 온 부작용은 커피를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꺼번에 사놓을 수 있고 훨씬 오래 먹을 수 있어 선택된 훠얼씬 저렴한 홍차는 거의 양이 줄지 않고 있고, 나는 오늘 기어이 K선생님이 뽐뿌를 주었던 그라인더를 주문하고 말았다.
요렇게 생긴 포렉스 핸드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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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커피 매니아인 J군과 맛난 커피를 마시고나서 갈아서 포장해온 걸 본 K선생님은 어찌 그라인더도 없이 커피맛을 즐기려 하느냐 한탄을 하셨다.
전에 서랍식이 있었는데 귀찮아서 누구 줘버렸어요,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것도 귀찮으면 아침마다 커피를 갈아 내려줄 남자를 찾으면 된다는 것. 이건 그냥 공허한 농담이 아니라 실제 그 선생님의 경험이며 생활이기도 하다.

직접 원두를 사다가 볶고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항상 휴대용 커피드립용기들을 파우치에 곱게 싸가지고 다니는 이 분은 집에서도 아침마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려서 사모님께 대령해놓는데, 사모님은 이것만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용서되고 인정된다고 하신단다. 결혼생활에서 부대끼는 어려움이야 알 수 없는 것이긴 하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위해 준비된 신선한 커피향을 만끽하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 과연 그럴 수 있을 거 같다고 맞장구를 쳐드렸다.

그 선생님의 어법상 다소 단순화되거나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순 있겠지만, 거기엔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에 대한 어떤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작고 사소할 수도 있는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진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즐길 수 있을 때 튼실해지는 관계, 그로 인해 관계에서 뿐 아니라 지친 일상의 삶에도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일들.  

두툼한 냄비와 후라이팬도 장만했고, 날이 추워진다고 전기 히터도 하나 주문했고, 알라딘에 저렴하게 나와있는 재즈 컬랙션들도 계속 뽐뿌를 받고 있으며, 이래저래 지출이 많다. 물욕을 경계하되 오늘의 교훈도 기억해야겠다. 좋아하는 커피를 아예 끊으려하다가 더 많이 마시게 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 T.T
오늘쯤 배달될 히터가 기대가 된다. 비슷한 중소기업제품이 많고 한결같이 맘에 안드는 유사한 촌스런 디자인땜에 한참 고민을 하다 그중 나아보이고 저렴하고 기업 이미지도 괜찮아 보이는 청풍 제품으로 결정했다.
내 티비처럼 클래식(!) 하게 생긴데다, 옛날처럼 물주전자를 올려놓아 가습기를 대신할 수 있고 고구마도 올려놓아 구워 먹을 수 있다하니, 또 전기요금이 가스비보다 훨 저렴하다 하니, 광고대로라면 꽤 쓸만 하겠다. 공기청정기능에 원적외선도 나온단다. ㅎ
어디 양철 도시락통 파는 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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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후기 : 포렉스 핸드밀은 작고 디자인 이쁘고 세척도 용이하여 편리하지만 다소 힘이 들어간다. 팔근육을 단련시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풍무구 전기 히터도 그럭저럭 괜찮다. 온기가 사방으로 빨리 퍼지므로 한 방향으로 열기가 나오는 히터보다 훨씬 우월하다. 낮에 일할 때는 이거 하나로도 난방 가능하겠다. 단 물을 팔팔 끓이거나 고구마를 굽기는 좀 역부족인 듯.  데우거나 온도를 유지하는 정도로 생각해야겠다.

** 전기 검침 결과 전기히터는 가정에선 생각보다 전력소모가 많은 것으로 판명. 유의하시길.  

재즈

무심코 흘려 들었던 시디를 찾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게도 요즈음, 어쩌면 꽤 오래 내 안을 흐르고 있던 ‘분기’가 있었음을 감지한다.

요즈음 주로 듣는 건 재즈다.
재즈란 음악이 지금 여기서 아무리 “와인과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고급하고 세련된 취향쯤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태생이 아프리카 노예의 삶의 애환과 뉴올리언즈의 비천한 거리를 뿌리로 한다는 점에서, 클래식을 비롯한 다른 음악 장르나 다른 예술 형태와는 차별화된 어떤 정조,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경계없이 넘나들고 스며드는 그 형식에서뿐 아니라, 삶에 천착된 영혼의 언어 같은 그 매력에 빠져들다보면, 그 아름다운 선율, 리듬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들이, 삶이 보이고, 또 그러다보면 내 안의 어떤 분기에 대해서도 객관적 거리가 생기는 느낌이다.
라군의 말대로, 위로를 필요로 하는 때에 음악만한 게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주가에 따른 변주의 묘미가 매력인 재즈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 뿐 아니라 자신의 근육, 체력, 처지에 맞는 악기와 연주 스타일의 선택, 그리고 또한 그것으로 연주하기에 적합한 곡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내게 상기시킨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세련된 연주 스타일은 그의 체력 조건이 고려된 선택이기도 했다 하고, 피크를 쓰지 않고 엄지만을 이용한 재즈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의 독특한 연주법은, 큰 소리를 내기 어려운 가난한 동네에서 조용히 연습을 해야했던 그의 환경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노트가 필요하시다면

노트와 펜을 좋아하고 특히 만년필을 좋아라 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긴 하지만, 하는 일의 특성상 온라인 노트도 종종 사용한다.
요즘엔 이런저런 편리한 툴이 많이 나왔을 텐데, 내가 꽤 오래동안 쓰고 있는 건 스프링 노트다.
http://springnote.com/
무럭무럭 자라나는…ㅋ. 건강하게 있기만 해다오.(망하지 말고). 자료 날리지 않고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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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페이스 단순하고 기능도 간단해서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웹서버에 저장되는 방식이므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서 어디서나 꺼내 볼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겠고, 공개 여부나 권한 설정도 가능해 여러 사람간에 공유를 할 수도 있어 함께 프로젝트 작업을 할 때 유용하겠다.
나는 주로 개인용 메모노트로 쓴다. 벤치마킹한 링크 등을 저장할 때 편리한데, 간단한 링크 설정 기능도 있어 여러 문서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기능도 유용할 수 있다. 이미지나 웬만한 문서 형식도 다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가 된다. 스케줄러, 보고서, 레시피, 회의록 등 다양한 템플릿도 제공한다.
자동저장이 되니 편하고 서비스가 문을 닫지 않는 한 따로 백업받지 않아도 되고 아이폰에서도 접근이 쉽다.
공간 이동이 잦거나 특히 웹서핑중 메모가 필요하신 분, 메모들을 한 데 모아 손쉽게 관리하기 원하는 분, 내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가 종종 실종되는 B씨같은 분들에게 추천해본다. 동영상 튜토리얼도 있다.
당근 보안은 장담할 수 없으므로, 국가기밀이나 천기 누설, 유출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정보를 저장하기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밀려 있는 일들을 끝내고 마냥 퍼져 있는 주말.
개심사로 훌쩍 떠나려 하다 오후에 비올 확률 60% 예보에 포기하고, 고래씨가 보내온 친절한 장문의 자전거 구입에 유용한 정보들을 근거로 검색해본 자전거 정보와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정보를 스프링노트에 기록해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리산 트랙킹을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따위의 철없는 문장을 떠올려보면서.

* 그런데 생활형 미니벨로 구입이 여의치 않다. 중고나 온라인매장에서 구입하는 건 수리나 정비 같은 문제땜에 주위에서 말리는데, 오프라인샵에선 맘에 드는 걸 찾기 어렵다. 동네샵에 전화를 해보니, 고가의 고급 모델에 올인하는 듯, 그런건 온라인에서 구하라 한다. 온라인으로 사서 오프라인샵에서 조립, 정비를 받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좀 내키지 않는 게 사실. 자전거란 자고로 쌀자전거로 배우는 거라는 얘길 들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자전거문화가 참, 고급화가 되어 있구나, 어느새.

역전만루홈런

아래에 언급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씨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노래하던, 역전만루홈런을 보지 못하고 안타까이 사위어간 이 꽃다운 젊음에 명복을…

웹로그 분석툴

구글 analytics는 웹로그 분석툴이다. 간단히 등록하고 사이트나 블로그에 몇 줄짜리 소스를 삽입하면, 방문자 분포와 성향, 방문 경로, 방문자의 네트워크 속성과 브라우저 유형까지 꽤 많은 웹로그 분석 정보를 볼 수 있는데, 누락되는 수치도 있지만 대략 70% 정도는 파악이 가능한 것 같다.
종종 사이트 리뉴얼 등을 할 때 기획 단계에서 이 자료를 제시하기도 해서 몇 개 사이트를 등록해놓고 있으므로 여기에 들어왔다가 어쩌다 내 블로그의 웹로그 정보도 볼 때가 있다.
다른 거엔 관심이 없으므로 어쩌다 보게 되는 건 방문자 분포 정도인데, 세계 지도가 뜨고 클릭해 들어가면 도시의 방문자수까지 파악이 된다.

세계 지도에선 미국 동부와 서부, 캐나다의 항시 접속이 있고 어쩌다가는 러시아에서도 접속이 감지된다. 캐나다와 러시아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접속자수는 그곳에 살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을 떠오르게 한다.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훈훈해진다.
국내에선 주로 분포가 서울이지만  고양시, 안양, 대구, 완도 등도 뜬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먼 곳에서, 검색엔진을 통해서도 아닌 직접 트래픽으로 별 볼 거도 없는 궁색한 내 블로를 방문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의아한 일이면서도 어쨌거나 기분 좋은 일이어서 마음이 좀 부드러워진다.
특히 완도 같은 경우, 보길도를 갈 때 잠시 들렀던 적 외에는 가 본 적아 없는 저 먼 땅에서 내게 접속하려는 이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좀 들뜬다. 언젠가 완도를 방문하게 되면 이 생각이 날 것이다.

궁금하신 분은 https://www.google.com/analytics 여기를 방문해서 서비스에 가입해 보시길. 무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내가 내 돈 주고 일 시키는데…”를 되풀이하며 정말 머슴 부리듯 일을 시키던 변덕스런 클라이언트의 일을 늦게까지 마무리 하고는 잠이 안와, 새로 시작하는 일의 로고작업과 지구 반대쪽에서 한의원을 여는 J양의 로고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거의 밤을 새워 버렸다.  나의 가을을 아쉽게 만들어버린 변덕스런 클라이언트(정확하게는 싸모님)는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일”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를 정말 모르며 아마 앞으로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작업이 완료되고 사이트가 오픈된 후에도 잔금 지급을 미루며 계속해서 일을 시키려는 걸 보며, 어렸을 때 어딘가에서 보았던, 딸이 키가 커지면 딸을 주겠노라고 거짓 약속을 하고 머슴을 착취하던 마님이 생각났다. 지금이 어디 그렇게 해서 좋은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 때인가 말이다. 더군다나 디자인 같은 영역에서.(웹사이트에도, 디자인에도 문외한인 그녀의 눈높이에 어쩔 수 없이 맞추어주다 보니 실제로 많이 산만해지고 망가질 수 밖에 없다. 나름 고급개발자를 데려다 이 무슨 어리석은 일인지.) 정직한 평가와 신뢰를 보여주고 “돈 주고 일 시키는” 게 아니라, 돈과 나의 노동을 교환하는 평등한 입장에서 작업자의 능력을 존중해주는(사실 전에 없이 나를 좀 어필하기는 하였다. 하두 데여서 말이지…) 새 클라이언트의 일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즐거운 일을 할 때 얼마나 일의 효율이 높아지는 지, 그녀는 정말 모르는 것이다. 이건 정말 ‘입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며,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그냥 상식적인 사고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오지 않는 잠을 포기하고 집어든 신문에서, 고전 오디세이, “돈이 돈을 팔고사는 세상…’상업의 신’이 펄쩍 뛴다” 라는 제목이 눈에 뛴다. 로마에서 장사와 상업을 관장하는 신 메르쿠리우스(Mercurius)가, 물건에 말을 붙여서 구전(口錢)을 취하는 장사꾼의 모습을 보여주는 (넬레우스 왕의 머슴) 바쿠스를 돌로 만들어버린 사연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장사 윤리의 문제에 대해, 장사와 관련해서는 거짓과 정직이 함께 갈 수 없음을 지적한 소크라테스의 인간의 욕망에 대한 언급과, 또 이에 반대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논리도 간략히 소개된다.


메르쿠리우스가 자신을 속이고 영리를 취하려는 바쿠스를 돌로 만들었을 때, 로마인들이 이 돌을 index라고 불렀다는 것이 재밌다. 돈이라는 것이 본래 표준- 척도로 작용하는 표지(signum)라는 것이며,  메르쿠리우스 신의 이 행위는 표준으로서 혹은 척도로서 항상성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역시나 학자로서 글쓴이(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이 대목에서 이 척도가 현재 마구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제대로 된 기준과 척도 역할을 수행하는 돌을 다시 세우는 이 인류 전체에게 가장 절실한 현안이라고 글을 맺는다. 제목을 다시 보니 그 아래에 “식을 수 없는 ‘메르쿠리우스’의 분노” 란 부제가 달려 있다.

“심청전, 춘향전 ‘권선징악’은 ‘뻥’이야”라는 제목은 고전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다시 읽는다는 <전傳을 범하다>라는 책의 서평이다. 요즘은 제목을 참 잘 뽑는다는 생각. 책도 흥미롭겠다. 성균관 스캔들이던가…현대적 감수성으로 포장한 사극 혹은 사극을 빙자한 멜로드라마는 ‘뻥’이기도 하고 ‘뻔’하기는 해도 은근 재밌기는 하더라만…

<장정일의 책 속 이슈>는 슬라보예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소개했다. 이 시대 현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사회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로 봐야하며, 진정한 진보인사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란다. 책의 제목은 “공황과 재출발 사이를 사이를 왕복달리기 하는 자본주의의 희극적인 반복”을 묘사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새 출발을 촉구(!)하는 것이 자신이 읽은 이 책의 핵심이라며, 그의 급진주의적 정치이론을 모르쇠하지 말자는 주장이 (표현이) 꽤 세다. 장정일스럽다.

“저널리즘”이란 제목도 눈에 뛴다. 어제 통화하다 들었던 단어 때문일 것이다. 콘텐츠 생산자의 자기규율 원칙으로서의 저널리즘에 관한 얘기다.

신문은… 한편에서는 ‘저널리즘‘이라는 장치를 통해 비즈니스를 스스로 제어한다. 저널리즘은 콘텐츠 생산자가 스스로를 규율하는 원리다. 사실 확인, 균형 감각, 객관적 시선 등이 그 원칙의 핵심에 있다. 언론인들이 스스로의 직업을 규정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같이 정한 것이다.
… 그리고 그 ‘저널리즘’ 자체가 다시 한 번 신문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인다. 신문에 글을 쓰는 언론인은 객관적일 것이고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신문을 사 보고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생산자의 자기규율 원칙인 저널리즘은 언론자유 운동과 한 쌍이다. 기자는 때로 정치권력과 통념과 종교의 선을 넘어서 진실을 추구하기도 하며, 그 권리를 스스로 지켜내곤 한다. 스스로를 엄격히 규율할 때, 더 강력한 힘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  트위터와 신문.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한겨레 오피니언


어제 신문에 실린 노출혈로 쓰러진 1인 밴드 이진원의 해맑은 웃음에는 맘이 시렸다. 홍대앞 클럽타에서 10일 공연이 있다는데, 이한철, 좋아서 하는 밴드, 오지은 등이 함께 하는 모양인데, 수요일이니… 선약이 아쉽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30시간만에 발견한 지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문득 경각심이 들기도 한다. 30시간이면 하루가 조금 지난 시간. 내가 아무와도 연락, 접촉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 긴 시간이 아니다.
지난 번 결석 수술 때는 새벽에 혼자 배 끌어안고 응급실까지 걸어갔다고 자랑하기도 했지만, 그런 다행한 일이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고, 집안 병력도 있으니… 귀찮더라도(!) 하루에 한 번쯤은 안부 전화를 나눌 애인 하나쯤은 장만해두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떠나는 것에는 아무 두려움이나 미련이 없지만(죽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가능하면 곱게, 훌쩍, 떠나고 싶은 소망이 있으니 말이다.  

읽지 않은 신문이 쌓이는 일이 잦다. 어떤 날은 신문이 속속들이 읽히는데 많은 날엔 통 그 안으로 시선이 들어가지 않는다. 신문의 퀄리티나 주제가 그리 편차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 안에 담기는 세상이 그렇게 다르지도 않을 터이니 아마도 그걸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세상과의 접점이 좁아져가는 느낌… 그것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지만,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걸 추구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내 안의 세계가 너무 좁고 어둡다는 것이다. 때로는 소스라쳐 뛰쳐나오고 싶을 만큼.